생각나누기/글마당

나희덕-손톱

나비 오디세이 2018. 7. 23. 10:05

손톱

 

               나희덕

 

 

깎아도 깎아도 가벼워지지 않는 형벌,

제 몸을 깎아내리면서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노릇을 얼마나 계속해온 걸까

동료가 해직당하고 선배가 잡혀가는 중에도

무사히 살아 제자리에 붙어 있는,

잘려나가도 금세 더 길게 자라오르는 손톱처럼

나는 여기에 남아 있구나

매달 월급봉투를 헐어 전교조 후원금을 내고

해직교사 복직을 위한 서명도 하지만

끝내 걸어가지 못한 마지막 한 길 있어

온몸으로 피 흘리며 깊어가지 못하는

이 가슴 속, 참회의 낮은 목소리

깨물고 깨물어도 줄어들지 않네

어느새 손톱 밑으로 때가 스며들고

장마철 풀숲처럼 저도 모르게 무성해지는 가슴,

어떤 낫으로 베어내야 다시 자라지 않을까


<<뿌리에게>>, 창비, 나희덕 시집 중에서

'생각나누기 > 글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사랑-문태준  (0) 2019.03.04
김명인-복날  (0) 2018.07.23
김혜순-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0) 2018.07.23
2018년 신춘문예 당선 시 모음  (0) 2018.01.27
그 노인이 지은 집/ 길상호  (0) 2017.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