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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오디세이 2005. 10. 7. 13:24

그녀와 나는 36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를 달리해서 태어났다.

그녀는 머리가 하얗게 새었고

곱던 피부에는 깊게 패인 주름이 가득하며

갖은 고생으로 인해 질병을 얻고 몸은 깡말라 있다.

 

어제 그녀를 만났다.

몇 년만에 만난 그녀는 더욱더 쇠잔해져 있었다.

내 가슴에는 소리없는 절규와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저 바라볼 수 밖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었다.

그리고 "건강하세요." 라는 말을 하며 그녀와 눈을 마주했고

힘줄이 굵게 드러난 손을 잡아 주었을 뿐이었다.

 

난 최근에야 그녀와 내가 같은 띠이며

정확히 36년이라는 세월의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그전에는 막연히 그녀를 자애롭고 강물같은 흐름을 간직했고

넓은 바다같은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 밖에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새로운 사실이 나에게 그전에 알았던 그녀보다 더 깊이 이해하는

그런 역할을 했다. 그저 띠가 같다는 이유가 내게 그렇게 큰 심리적 기능으로

작용할 줄 몰랐다. 내 자신조차도.....

 

그리고 그녀를 보면서

나의 36년 뒤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되었다.

내 육신을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지금.

내가 올바르게 처신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에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이 내게 남은 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르게 사는 삶.

그것이 남은 내 생에 최대의 과제라는 생각이....

후회없는 삶. 그리고 갈 때 미련을 갖지 않을 수 있는 삶.

 

사랑의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내 뼈가루를 그 나무에게 줄 수 있는 그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지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기에

과거에 연연하기 보다

먼 미래를 바라다 보는 우를 범하기보다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현재 이 순간을 가장 아끼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남은 인생을 소중히 하는

가장 쉬운 길이며 또한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은 쉽고 가깝지만 가장 행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리라.

 

비가 내린다.

이 순간에도...창가를 때리는 빗줄기에 미소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