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함민복 백목련 함민복 어쩌자고 백목련은 항복의 白旗로 한 해를 시작하는가 한 생을 해탈한 자의 눈부신 파멸이여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 1996 생각나누기/글마당 2020.05.22
흰눈-공광규 흰눈 공광규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조팝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이팝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또 다 못 앉으면 쥐똥나무 울타리나 산딸나무 가지에 앉고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아까시.. 생각나누기/글마당 2020.05.05
뒤편-천양희 뒤편 천양희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너무 많은 입》, 창비 생각나누기/글마당 2019.09.21
눈 오는 날/ 이문희 눈 오는 날 이문희 논밭들도 누가 더 넓은가 나누기를 멈추었다. 도로들도 누가 더 긴지 재보기를 그만 두었다. 예쁜색 자랑하던 지붕들도 뽐내기를 그쳤다. 모두가 욕심을 버린 하얗게 눈이 오는 날. ============================================================= 1997년 신춘문예 조선일보 동시 당선작 .. 생각나누기/글마당 2019.07.28
휴전선의 산새들/조정이 휴전선의 산새들 조정이 휴전선 미루나무 가지에 북쪽 산새, 남쪽 산새들이 모여 날마다 정답게 지냅니다. 『통일 통일 노래만 부르다가 손주 턱에 수염 나겠다야. 우리 이 작은 부리로 은하수라도 떼어다가 다리를 놓을까,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나란히 나란히 놓아 볼까, 은하수 .. 생각나누기/글마당 2019.07.28
첫사랑-문태준 첫사랑 문태준 눈매가 하얀 초승달을 닮았던 사람 내 광대뼈가 불거져 볼 수 없네 이지러지는 우물 속의 사람 불에 구운 돌처럼 보기만 해도 홧홧해지던 사람 그러나, 내 마음이 수초밭에 방개처럼 갇혀 이를 수 없네 마늘종처럼 깡마른 내 가슴에 까만 제비의 노랫소리만 왕진 올 뿐 뒤.. 생각나누기/글마당 2019.03.04
[스크랩] 꽃살문 / 이정록 꽃살문 / 이정록 꽃에는 정작 방년芳年이란 말이 없다네. 그래, 천년만년 꽃다운 얼굴 보여주겠다고 누군가 칼과 붓으로 나를 피워놓았네만 그 붓끝 떨림이며 자흔刺痕 바람에 다 삭혀내야 꽃잎에 나이테 서려 무는 방년芳年 아니겠나? 꽃이란 게, 향과 꿀을 퍼내는 출문이자 열매로 가는.. 痛通統/서랍 2018.11.02
김명인-복날 복날 김명인 말복이라 식당 안은 보신하러 온 손님들로 법석인데 온몸 개개풀리는 땡볕 나절을 熱絲 속으로 꼿꼿이 고개 쳐들고 선 화단의 저 꽃 이름은 무얼까 그 아래 목매아지로 배 깔고 엎드린 황구 한 마리 내가 묻는 것은 꽃말이 아니라 표 나게 삼복을 건너는 제각각의 팔자인데 케.. 생각나누기/글마당 2018.07.23
나희덕-손톱 손톱 나희덕 깎아도 깎아도 가벼워지지 않는 형벌, 제 몸을 깎아내리면서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노릇을 얼마나 계속해온 걸까 동료가 해직당하고 선배가 잡혀가는 중에도 무사히 살아 제자리에 붙어 있는, 잘려나가도 금세 더 길게 자라오르는 손톱처럼 나는 여기에 남아 있구나 매달.. 생각나누기/글마당 2018.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