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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실잣기

나비 오디세이 2005. 10. 13. 01:41

 

  중국의 정치범이었던 쳉니엔은 회고록 <상하이에서의 삶과 죽음>에서 6년 반의 감옥 생활을 돌아본다. 좁은 독방에 갇혀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살겠다던 그의 의지를 갉아먹은 것은 자신과 딸의 운명에 대한 근심과 좌절감이었다. 어느날 그는 감방의 쇠창살을 기어오르는 콩알만한 거미 한 마리를 보았다. 거미는 쇠창살의 맨 위까지 오르자 실을 타고 내려와 몸을 휙 날려 옆 창살로 옮겨가더니 실을 고정시켰다. 그렇게 골격 구실을 할 실을 여러 개 고정시킨 후 거미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거미의 자신감과 숙달된 솜씨를 지켜보던 쳉에게는 스스로 답할 길 없는 거미에 대한 물음이 수없이 떠올랐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이 방금 눈부시게 아름답고, 보는 이의 의기를 드높여주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사실이었다. 희망과 용기가 되살아난 그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모든 일이 무시무시한 마오쩌둥과 그의 혁명당원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깨달았다.

 

  역경은 때로는 평상시에는 그냥 지나쳤을 일에 눈을 돌리게 해준다. 그리고 그 일로 통찰력과 깨달음을 얻으면서 그 순간이 기억 속에 또렷이 각인된다.

  -  작은 것들 속에 깃들인 신의 목소리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조안 엘리자베스 록 지음/ 조응주 옮김 -

 

  이 책에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벌레들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었고 그들에게도 의식이 있고 지능이 있으며, 벌레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책이다.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각기 다른 벌레들의 특징과 장점과 그들만의 삶이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작가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각 장마다 다양한 예들과 각 분야에서 수집한 정보들을 들어가며 우리들의 관념을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한다. 최종적으로 생태계의 변화가 우리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간과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오히려 우리 인간들이 내세운 논리에 의해 벌레들이 피해를 받고 있으며 순전히 우리의 관점에서 익충과 해충으로 구분하여 놓았다.

  각 장 요소 요소에 있는 성실한 정보는 유익하게 작용하여 내 마음에 와 닿았고 내 자신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내용들에 내가 직접 실천해보고 싶은 부분들도 많이 있다.

  이 책의 말미에 있는 '운명의 실잣기'를 접하는 순간은 나를 전율케 했다.

  얼마전에 우리집 베란다에 거미들이 집을 지었다. 아주 많은 거미들이...난 무심코 그 거미들을 집어 던졌고 줄을 치웠다. 거추장 스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참 미안했다. 그 뿐인가..산에 가다가도 난 무심히 그저 그들의 집을 지팡이로 치고 손으로 걷어내고...

  만일 내가 그들의 '운명의 실잣기'를 실제로 지켜보았다면(한 번이라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 실잣기를 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며 얼마나 많은 인내와 끈기와 노력이 들어가는 지를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했더라면 말이다.

  거미를 비롯한 모든 곤충들과 인간과의 사이에는 관찰과 직관만이 밝힐 수 있는 유대관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치유자 레이첼 나오미는 "바라보는 행위가 보는 이를 변화시키고 평생 보는 방식을 바꿔놓는다"고 주장한다. 신비주의자 시인 릴케는 이를 '경건한 내면 보기'라고 했다. '내면 보기'를 하면 바라보는사물의 겉모습을 뚫고 본질을 파악하게 한다고 했다.

 

  두려움과 겁에 질려서 바라보기를 하는 것은 거미도 원치 않는다. 다른 모든 벌레들도 마찬가지다. 파리나 모기나 바퀴벌레나 벌이나 .... 일단 편견에 사로잡힌 벌레에 대한 두려움을 던져버리고 가슴깊이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두려움없이 벌레들을 대해야만 그들과 대화가 가능하고 진정한 바라보기 즉, '내면 보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번 시도해 봄직한 일이라 여긴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운명의 실을 잣는 거미를 관찰하는 일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