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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를 읽고

나비 오디세이 2006. 1. 4. 11:48
 

독서감상문

시간도둑 그 ‘영원성’에 대하여

-“모모”를 읽고-


 

  한 여름 강렬한 태양빛으로 인해 대지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숨을 고르기 조차 힘들게 하였다. 그 시간이 끝이 없을 것 만 같았는데 그 시간도 지나가고 바야흐로 풍요와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계절의 변화가 진리이듯 누구에게나 시간이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 또한 진리이다. 동일 조건의 동일 양의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어 죽은 시간이 아닌 살아 있는 시간으로 가꾸는 것도 내 시간의 주인인 나의 몫일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어디에다 활용하느냐는 나의 선택이다. 선택에서의 동기가 다르듯 독서의 동기에서도 저마다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다. 가을이 되니 읽고 싶은 책이 생기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잡은 책이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독서의 열풍이 일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접해야 하는 물건이 아니다. 누구나 책을 다정한 친구로 삼아서 항상 곁에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자신을 위한 의무이며 책임이라고 여겨진다.

  ‘모모’(미하일 엔데 지음, 한미희 엮음)는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했고 독서 감상문 공모전도 한다기에 다른 일 미루어 두고 ‘모모’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시간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시간과 관계되어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해 시종일관 작가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읽어 나갔다. 읽는 도중 내 머릿속에는 중등교사인 쉴레터 선생의 말이 맴돌았다.

  그는 말하기를 “어떤 생각을 습관적으로 갖는가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그것은 가까운 인간관계보다 더 많은 영향을 우리의 인생에 미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들만큼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데 많은 역할을 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그에게 “왜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하죠?”라고 질문하면 ‘마법의 돌’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유목민들이 천상의 존재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천상의 존재는 유목민들에게 배낭에 가능한 한 많은 돌들을 모아 담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짊어지고 하루 동안 걸으라 했다. 하루 밤이 지나고 나면 그 돌 때문에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할 것이라고 했다. 유목민들은 천상의 존재가 그들에게 부와 장수를 가져다주고 우주적 진리를 설파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그것이 아님에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들은 마지못해 몇 개의 돌들을 배낭에 담았고 그것을 짊어지고 걸었다. 그러나 하룻밤이 지나고 배낭을 열어보니 돌멩이는 모두 다이아몬드가 되어 있었다.

  습관이라는 돌멩이의 중요성을 유목민들은 알지 못했다.

  이 책 ‘모모’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습관으로 정착하게끔 도와준다. 어떤 생각을 어떻게 내 몸에 습관적으로 베이게 하느냐에 따라 내가 가진 시간이 돌멩이로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로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한 갓 돌멩이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언젠가는 내가 품은 생각에 따라 다이몬드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3부 21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1부 모모와 친구들, 2부 회색 신사들, 3부 시간의 꽃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각 장은 소주제로 읽을 내용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 책의 특징은 어린 꼬마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동화적 구성을 띠며 다소 환타지 소설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곳곳에 배치된 환상성과 이상성의 요소는 어린이에게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해주고 어른에게는 잠시 어린이의 세계로 들어가 과거를 회상하게 하며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 꼬마 모모는 말라깽이에 키도 작고 허름한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를 가졌다. 문학에서 대부분 주인공은 멋지고 깔끔한 외모를 지닌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모모는 그 틀을 깬다. 틀은 여기서만 깨어지는 것이 아니고 등장인물들의 면면이 그렇다. 잘난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도 아니다. 평범한 소시민들이 주인공이며 그 주인공들이 인간들의 시간을 빼앗아가는 시간도둑, 즉 회색신사들과 맞서 싸우고 결국 주인공이 빼앗긴 시간을 인간들에게 되돌려 준다는 이야기이다. 시간을 도둑맞는 다는 착상도 기발하고 시간관리자가 있어 나눠준다는 발상도 기이하다. 이러한 소재들이 이 책을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꼬마모모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사람의 소리, 모든 사물의 소리에도 진정 가슴으로 귀 기울여 들어줄 줄 아는 능력이다. 진정으로 들어주기에 모모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어린이만의 맑은 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관광 안내원 기기는 모모가 있으면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도로 청소부 베포는 말의 씨앗을 찾아내는 힘이 생긴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낱말이 떠오르지 않아 애먹는 베포지만 말이다. 원형경기장 터에 놀러오는 꼬마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모모가 있으면 어떤 놀이든 재미있고 아이디어가 생성되어 즐겁게 놀지만 모모가 없으면 그 힘이 미약해진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모모만의 힘이다.

  정말 누군가의 마음을 알고 싶고, 때론 진정 나의마음을 알고, 보고 싶은데 그 마음을 알지 못할 때는 그 속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다는 갈망을 누구나 한 적 있을 것이다. 모모를 보면서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호라 박사가 모모를 마음속 여행을 시켜주는 장면은 은유와 상징이 존재한다. 마음 속, 그곳은 모든 것이 황금빛이다. 황금빛 천장, 황금의 사원, 황금의 추가 돌아가며 시간의 꽃을 한 송이 한 송이 새로이 만들어 내는 장면은 정말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황홀하고 시간이 황금과 같음을 상징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 관리자이며 시간을 나누어 주는 호라 박사의 공간도 모두 황금으로 되어 있다. 

   인간은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좋아하고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작 자신의 가슴에 있으며 마음 안에 있음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날 시간 도둑들이 서서히 원형경기장 터까지 잠입하고 그곳에도 따스함 보다는 차가움이 더 많아 지게 된다. 그 후 모모는 친구들을 잃게 된다. 회색신사들의 모략에 의해서. 그때 모모에게는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감옥처럼 느껴지고 외로움의 긴 터널에서 자신만이 남겨져 있다는 진한 슬픔을 겪어야 했다. 외로움에도 종류가 있고 각기 다르지만 모모처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친구들과 함께 행동하는 데서 기쁨과 행복을 찾는 소녀에게는 그 친구들이 사라졌다는 고통은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다. 

  친구란 무엇인가? 하늘에 별과 같고 달과 같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 지는 것이 친구가 아닐까. 친구란 금란지계(金蘭之契)란 말이 있지 않은가. 둘이 마음을 합치면 쇠도 자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고, 그 향기가 난의 향기와 같다는 뜻이다.

  “매화처럼 사람을 고상하게 하고, 난초처럼 사람을 그윽하게 하고, 국화처럼 사람을 소박하게 하고, 연꽃처럼 사람을 담백하게 하는 사람이 친구다.” 라는 말을 읽은 적 있다. 조그만 월간지에 어느 시인이 쓴 위 글을 읽고 가슴 뭉클했고 그 말이 너무 좋아 외우다 시피 했다. 더불어 시인은 또 말했다.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나 친구와 더불어 있을 때 매화가 되고 난초가 되고 국화가 되고 연꽃이 된다. 이렇듯 진정한 친구는 나로 하여금 매화와 난초와 국화와 연꽃의 격을 갖게 만든다.”라고 쓰고 있다.

  모모에게 친구들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어떤 격 이든지간에.

  그러한 친구들을 잃어버린 모모에게 수많은 시간들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진정한 시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시간이란 시계나 달력으로는 잴 수 없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우리들 가슴에 살아 있는 시간이 아닐까 한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수 있는 열려 있는 눈이 있어야 하고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 보고 들을 수 있는 상태에 존재하는 시간이 진정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시간이 존재하고 친구가 있으면 사람들은 외로움의 덫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외로움의 늪은 타인이 만드는 경우보다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

에서 사람들, 특히 어른들이 회색신사들에게 시간을 도둑맞는 다는 설정을 해서 시간도둑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 깊은 곳을 파헤쳐 보면 시간 도둑은 내 안에 있는 내가 아니겠는가. 작가는 은연중에 그런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을 어른들이 스스로 깨우치길 바랐으나 그리 되지 않는다. 모모가 유일한 희망으로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색신사들의 천적인 어린이를 내세워 희망을 상징하고 미래의 자원인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내포하고 있다. 모모를 구세주처럼 내세운 것은 작가의 의도가 이 책의 저변에 깔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자신의 삶은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어린이들은 그것을 피부로 느낀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모모가 외톨이가 되었을 때 나무와 새들과 돌멩이들이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 때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거북이 있다. 이름은 카시오페이아. 북반구 하늘에 더블유자 모양으로 떠 있는 별이름과 같다. 거기에 또 상징이 있다. 별처럼 빛나면서 모모가 가는 길을 밝혀주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나타내주고 있다. 아무리 모모가 유일한 희망이라지만 회색신사들을 상대하기엔 모모는 너무 약했다. 그것을 도와주는 존재가 바로 카시오페이아다. 거북은 등에 갑골문자모양으로 글씨를 써서 의사를 표현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30분 먼저 아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으로 모모를 인도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충실한 카시오페이아라고 호라 박사가 부르는 것도 그가 끝까지 임무를 완수할 것임을 내포하고 있다. 절대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지 않을 것임을.

  살다가 앞길이 막막할 때 정말 카시오페이아 같은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명쾌할까. 결과를 변경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30분 먼저 미래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호라 박사가 말하는 ‘운명의 시간’ 이 나에게 도래 했을 때 카시오페이아가 등장해 그 시간을 알려준다면 인생은 어떻게 변할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다.

  “이 세상의 운행에는 이따금 특별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오면, 저 하늘 가장 먼 곳에 있는 별까지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들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쳐서,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인간들은 대개 그 순간을 놓치고 말아 이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운명의 시간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다.” 이 말은 호라 박사가 모모에게 해 주는 말이다. 이 운명의 시간의 도래를 카시오페이아가 알려준다면...... 

  분명 시간은 존재한다. 우리가 항상 곁에 두고도 느끼지 못하는 공기 같은 존재로서 또는 느끼고 많다 적다 말할 수 있는 형상화된 그 무엇으로도 존재한다. 그 시간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호라 박사가 모모에게 내는 수수께끼로 진정한 의미를 파악해보자.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이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세 형제는 하나일까? 아니면 둘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일까? 그들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으면, 넌 세 명의 막강한 지배자 이름을 알아맞히는 셈이야. 그들은 함께 커다란 왕국을 다스린단다. 또 왕국 자체이기도 하지! 그 점에서 그들은 똑같아.”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난 풀지 못했다. 나처럼 어른 되어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이 부분에서 어떤 이는 많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그저 읽어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어린독자라면 흥미롭게 재미있게 문제를 풀어나가려 애썼을 것이다. 모모처럼 푸는 과정에서 추리력, 논리력, 상상력을 동원해서 말이다.

  아동문학의 기능면에서 보면 환타지의 세계가 차지하는 바를 비중 있게 다루었고, 아동문학에서 흥미성은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 있다고 하나 그것을 읽는 독자가 없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아동문학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성인 문학에서도 흥미성은 강조된다. 텍스트, 독자, 작가가 삼박자를 이루어 의미를 재 생산해내는 과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책의 곳곳에 이러한 기능들을 배치하고 있다. 논리적 설명은 불가능하나 모모가 가는 곳에 일어나는 일들이 그렇고 그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그런 것이다. 흥미성은 이 책의 두께를 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여튼 모모가 시간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거라는 카시오페이아의 말대로 되었다. 첫째는 미래, 둘째는 과거, 셋째는 현재, 지배자는 시간이고,  그 지배자들이 다스리는 왕국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시간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니 명료하게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의 의미를 알았다. 그럼 시간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작가는 호라 박사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을 갖고 있기에 황금빛 시간의 사원을 하나씩 갖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원에 회색신사들을 들이게 되면, 회색인들은 시간의 꽃을 야금야금 빼앗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사람의 가슴에서 뽑힌 시간의 꽃은 죽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진짜 흘러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주인에게서 떼어 내졌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도 할 수 없다. 시간의 꽃은 전심전력으로 제 진짜 주인에게 돌아가려고 애를 쓴다.”라고.

  흘러가지 않은 시간은 죽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 도둑이 내게서 시간을 훔쳐갔지만 그것은 흘러간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다. 그 살아 있는 시간의 꽃잎을 가루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시가로 만들어 태워야만 그들이 살아 갈 수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간을 훔쳐 시간을 죽인 후 그것을 먹고 연명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도둑들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그들은 시간이 존재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파도가 끊임없이 바위를 때리는 것을 반복하듯 우리에게 파도가 되어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우리들이 인식하느냐, 못하느냐는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알 때 시간도둑들은 영원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허나 그것은 인간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다. 어느 한 사람만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 공동체 전체가 그 일에 동참했을 때에야 가능하다. 역으로 그럴 수 없음을 내포하고 있기에 시간도둑에게도 시간의 꽃에게 부여되는 ‘영원성’이 부여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관리에서 관계되는 것이 행복의 의미와 연관된다. 회색신사들이 모모에게서 친구들을 빼앗아가는 과정에서 몽상가 기기를 끌어들이는 것은 쉬웠다. 그는 성공을 꿈꾸었고 부와 명예를 탐내었다. 그에게 그것을 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성공, 부와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기는 모모와 함께 지냈던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그때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자신이 바라던 그 성공이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는 해악이라는 말을 하면서. 또한 그는 자신을 부리는 종업원에게 지배당하는 그런 형국에 이르게 된다. 결국 시간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 진정한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일을 혐오하게 되고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회색 신사들은 진실한 사람인 베포는 포섭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모모가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 그를 구하기 위해 경찰서에 찾아가 진실을 말하지만 그는 정신병자 취급을 당한다. 세상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다. 그것은 이 책이 쓰여 지기 전이나 쓰여 질 때나 쓰여 진 후나 마찬가지다. 진실을 외면당한 베포의 삶은 이전의 삶이 아니라 시간도둑들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시간도둑들에 의해 서서히 잠식되어가는 인간세계를 인식하게 해주며 그 위험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기는 몽상가요 꿈을 추구하는 자의 표본이며, 베포는 진실의 표본으로 등장한다. 상반된 두 인물의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회색 신사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각자 나름대로 행복했고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회색신사들이 훔쳐가는 것은 비단 시간만이 아님을 알게 한다. 회색 신사들은 인간에게서 행복을 앗아가는 악성 종양 같은 존재들이다.

  어른들은 이런 악성 종양 같은 존재들에게 아이들을 맡긴다. 어른들의 구미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여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며, 어린이는 미래의 인적 자산이라는 거대한 구호를 내세워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어른들을 설득하게 된다. 회색신사들의 천적이라는 어린이들마저 시간도둑들의 손에 넘어간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마지막 희망은 남아 있다. 모모다.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 대목이다. 처음에 모모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한다. 그러나 친구들이 외치는 비명소리를 듣고 두려움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가진다. 진정한 용기란 이런 것이다. 자신이 먼저가 아닌 친구와 가족과 어떤 대의를 위해서 나를 버릴 수 있는 것. 어린 모모지만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다. 진정한 용기는 사랑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그 힘으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두려움에 맞서게 되는 것이다. 두려움과 맞서는 이 순간에 모모는 이미 자신의 임무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피하느냐, 맞서느냐 이 순간의 선택에서 어떤 일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가슴 안에 있다. 쉴레터 선생의 말처럼 우리 가슴 안에 어떤 생각을 습관적으로 갖는가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시간도둑에게 시간을 도둑맞지 않으려면 우리는 시간의 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습관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내게 시간도둑이 들어와 내 살아 있는 시간을 훔쳐가고 황금빛 사원에서 탄생하는 시간의 꽃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다. 이발사 푸지씨처럼, 성공한 기기처럼, 모모를 지키기 위한 시간 절약을 하는 베포 할아버지처럼 될 것임이 분명하다.

  막연히 가지고 있던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생각이 시간의 꽃이 생성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에서 충격으로 와 닿았다.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우리가 가진 시간은 아름다우며 그 꽃은 상처받지 않도록 우리가 지켜야할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이다. 내가 병들기 시작하면 내 주변 사람들도 병들게 되고 가족이, 사회가, 국가가, 세계가 병들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란 병을 퇴치하는 길은 내 안에 살아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하나의 경구처럼 습관적으로 외우는 방법으로 내 가슴에 깊은 생각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가을 들녘, 황금 들판이 펼쳐진 곳을 상상하니 우리 가슴속에 있는 황금의 사원이 연상된다. 햇살 가득한 날에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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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감상문을 썼던 것을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