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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을 읽고

나비 오디세이 2006. 7. 10. 06:05
 

독후감상문

행복한 만남 그 이상의 행복

-“유림”을 읽고-



  산책을 하거나 가파른 등산길을 산행을 할 때면 반겨주는 이들이 있다. 그들과의 만남이 있기에 산행은 외롭지 않다. 그들은 바로 늘 한결같은 미소를 보내는 자연의 소리와 자연의 향기이다. 이와 같은 만남이 책 속에도 있다. 책은 과거의 위대한 현인을 만나게 해주고 현재에 석학들을 만나게도 해준다. 그러한 책을 읽다보면 산책하는 기분으로 대화하듯 조용히 사색에 잠기게 책이 있는가 하면 때론 격렬한 전투를 벌이듯 책과 씨름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 ‘유림(최인호 지음, 열림원 출판)’은 처음에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전사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1부 1권 ‘왕도, 하늘에 이르는 길’에서는 아쉬움이 밀려왔으며 1부 2권 ‘주유열국, 사람에 이르는 길’에서는 공자의 생애에 대한 애정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1부 3권 ‘군자유종, 군자에 이르는 길’에서는 퇴계의 인간미와 진정한 학자의 길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그의 철학이 태어난 배경은 어찌 보면 지극한 휴머니즘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늘에 이르는 길, 그 높고 험난한 여정을 조광조는 너무 성급하게 오르려 했는가. 역사는 돌이킬 수 없고 가정법이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역사소설을 읽다보면 언제나 ‘만약에’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만약에 조광조가 정치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먼저 중종의 마음을 얻었더라면 유약한 성격의 중종이 훈구파의 손에 조종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설사 조광조가 중종의 역린을 건드렸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사사의 명을 내리는 중형을 내렸겠는가. 작가는 조광조를 한국의 마키아벨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양쪽으로 갈라져 있으나 오늘날에도 조광조는 여전히 부활하여 살아 있는 정치적 모델이 되고 있으니 죽었으나 죽은 것이 아닌 것이다.

  조광조의 유배 길에서 갖바치가 준 가죽신의 비밀은 바로 공자이다. ‘천년의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 구나’라고 써준 글귀의 뜻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것은 공자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공자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다른 성리학자들은 공자의 사상을 학문적으로만 연구하고 발전시켰지만 조광조는 공자의 사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 애를 썼다. 공자의 주유열국 생애를 돌아다보면 초기의 공자의 행적에 흡사한 정치인은 조광조에 해당하고 후기의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쓴 부분에서는 퇴계 선생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공자의 사상과 대비되는 사상가로 노자가 등장한다. 노자사상가들은 공자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노자가 현실을 도피하듯 사라져 버린 것이 옳은 일일까. 난세에도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외친 공자가 오히려 더 인간적이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사상가가 아닐까. 공자의 위대함은 가시밭 속에서도 자신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 있음을 강조하는 작가의 말에 일리가 있다.

  공자는 말했다. 올바른 정치를 하는 방법에 대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이는 공자의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이러한 정명주의(正名主義)는 질서의 극치를 이름이다. 모든 사물이 자기에게 주어진 명칭이나 명분에 꼭 맞는 올바른 상태에 있다는 것이니 혼돈의 세상을 질서의 세계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야말로 공자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2,500년 전 위대한 성인이며 철인인 공자의 사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공자가 말한 정명주의의 원뜻을 헤아리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공자의 주유열국 중에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을까. 그 시대 정치가들의 멸시와 사상이 다른 이들의 비웃음이나 비난보다는 제자들과 갈등을 빚었을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오랜 세월 공자와 함께 하였으나 스승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제자 자로는 자신의 편견 속에서 스스로 만든 우상, 공자상만 본 보았다. 우리들도 자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퇴계의 모고지심은 그의 태몽과 무관하지 않다. ‘공자가 대문으로 찾아오다’라는 퇴계의 태몽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는 성인들의 학문을 그리워하는 마음자세로 자신의 학문을 갈고 닦았다. 현재에도 선생의 태실을 ‘聖臨門’이라 명명하여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을 물러감의 생애를 산 퇴계는 공자의 생애와 정반대의 모습을 띤다. 조광조가 초기 공자의 실천적 제자라면 퇴계는 공자 후기의 학문적 제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유가사상에서 퇴계를 동양의 아우구스티누스라고 칭할 만큼 퇴계의 사상은 이웃나라 일본에까지 전파되어 우리의 문화가 높고 위대함을 천명했다. 퇴계가 어려서부터 거경궁리(居敬窮理)하여 공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학문을 넓혀 나갔으며 주자서를 공부할 때는 공자가 주역을 읽을 때처럼 하였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와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나온 것을 보았다. 이러한 책이 나온다는 것부터가 현재까지 살아 있는 공자의 현신을 보는 것이 아닌가. 공자의 핵심철학인 ‘예(禮)’에 대한 사상은 지금의 우리시대에 반드시 찾아야할 덕목이라 여겨진다. 작가의 말처럼 ‘그 예(禮)와 그 효(孝)와 그 충(忠)과 그 경(敬)’으로 가득 찼던 유림의 숲으로 가보는 것이다.

  유림의 숲에는 유가사상의 맥을 따라 동서양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성인들을 적재적소에 출현시켜 대비시키고 비교 설명하여 독자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하였다. 또한 고사성어의 유래와 어원 등을 자세히 설명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지적 욕구 충족과 함께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청소년을 비롯한 일반 독자들에게도 커다란 깨달음과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진수(眞髓)는 이야기이다. 역사는 과거에 존재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때의 변천속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화의 밑바닥에 흐르는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지식이다. 역사가는 이러한 것을 이야기하며, 때로는 자기의 견해나 통찰을 덧붙여 채색한다.”(독서의 기술, 모티머 J 애들러 외) “유림”은 본격적인 역사소설은 아니지만 역사가의 안목과 자료수집, 인물탐구 등 작가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15년 전 구상해서 시절인연이 맞아 출간하게 되었다는 책으로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큰 기쁨이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의 행복은 책을 집필하면서 펜의 힘을 느끼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또 철저히 준비한 자료를 지면을 통해 개진할 수 있음이 아닐까.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다는 것은 고통 중에 있는 행복일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독자 또한 작가와의 만남에서 위대한 성인과 위대한 철학자들과 그 모든 이들을 만날 수 있으니 기쁜 일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깨우치는 바는 많으나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우리 정신의 뿌리가 깊으며 우리 문화가 결코 모래성이 아님을 알게 되리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