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글마당

밥그릇 경전-이덕규

나비 오디세이 2017. 2. 7. 20:05

  밥그릇 경전

 

           이덕규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 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그러는

 

 

 

 

 

 

 

 

------------

* 조주선사와 어느 학인과의 선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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