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들

외할머니

나비 오디세이 2006. 1. 19. 21:55

 

납음(納音)이란, 자기의 생년 육갑에 나오는 오행(五行)을 가지고 남녀가 상생(相生)

되는 것을 맞추어 보는 것이다.

 

상생(相生)은,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이다. 금은 물을 생하고, 물은 나무를 자라게 하며, 나무는 불을 일으킨다. 그리고 불은 타고 남은 재로 거름을 만들며 흙을 비옥하게 하며, 흙은 쇠를 품어 준다.

 

상극(相剋)은, 금극목(金剋木)으로 쇠는 나무를 극하고, 도끼로 나무를 찍고 톱으로 나무를 자른다. 목극토(木剋土)는 나무는 흙을 무너뜨리며, 토극수(土剋水)는 물은 흙을 깎아 내리고 흙은 물을 메워 물의 길을 막는 것. 수극화(水剋火)도 마찬가지로, 물로는 불을 끄고 불로는 물을 말린다. 그리고 화극금(火剋金)이다. 이 세상에서 쇠를 녹일 수 있는 것은 불 뿐이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최명희님의 <혼불>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것이 어디에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중국 고대 주나라 문왕이 유배지에서 지었다는 <주역>에 나오는 팔괘(八卦)에 관한 내용이 아닐까 한다.

 

어릴적에 외할머니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들은 오면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두고 가거나 무엇인가 소용이 될만한 물건을 가지고 왔다. 나는 그것이 참 좋았다. 할머니는 치마폭에 모두 감싸두었다가 손자 손녀들에게 그것을 고루 분배해주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고루 분배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에게는 친손주, 외손주해서 엄청 많은 손주들이 있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즐기셨다. 손주들이 오손도손 모여 사는 모습이 당신 보시기에 참 좋았었던 것 같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엄청나게 큰 선물꾸러미가 전해졌다. 그 시절에 귀한 많은 것들이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기 때문이라고 엄마가 말씀해주셨다. 그랬다. 난 그때는 그저 할머니가 쥐어주는 맛난 음식들에 마음이 쏠렸다. 그게 좋아서 늘 곁에 붙어 다녔다. 나 뿐아니라, 외사촌들은 모두 거기에 붙어 다녔다. 그당시 할머니의 중얼거림은 <주역>에 나오는 많은 단어들이었음을 커서 알게 되었고 사람들은 할머니를 '점쟁이'라 불렀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전주 이씨 집안의 대장부같은 여인이었던 할머니는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단다. 우리 아버지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장모님은 대장부셨다고.

 

소문은 발이 달렸다. 아니 날개가 달렸다. 할머니에게는 더욱 그랬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은 날로 늘어갔고 그만큼 할머니 방 앞 토방에는 신발이 줄지어 놓였다. 그 수가 점점 늘어 났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집은 그곳을 떠나 읍으로 이사를 왔다. 손자 손녀들도 그것을 계기로 서로 흩어져 살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대장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천상 여자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시면 가녀린 한 떨기 백합같은 외모를 가지셨다. 좁은 어깨선, 긴 목, 날엽한 몸매는 싸구려 천으로 끈어 입은 한복도 고운 자태를 드러내었다. 언제나 신으시던 하얀 고무신. 그 할머니를 닮은 우리 엄마도 그랬다. 아니 여성스러움은 우리 어머니가 한 수 위였다.

 

일제시대, 6.25를 거친 세대로서 가난은 필수인 것처럼 모녀의 어깨위에도 내려앉았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제일 똑똑하고 잘 난 장남(큰외삼촌)은 전란중에 돌아가시고(그래서 우리는 얼굴을 사진으로만 보았다) 가녀린 몸으로 할머니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셨다. 내가 아는 것은 이정도이다.

 

할머니는 수면위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고고한 학처럼 보이셨으나 그 내면에서는 늘 바둥거리고 허덕이는 춤사위가 발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꽃잎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른이란...  (0) 2006.02.22
대보름  (0) 2006.02.10
겨울바다, 그리고 조카들  (0) 2006.01.11
명주  (0) 2005.12.29
동상이몽  (0) 200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