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들

어른이란...

나비 오디세이 2006. 2. 22. 22:14

  "사람이 비록 핏줄을 통해서 그 부모로부터 생물적인 모습을 받았다 할지라도 만일 정신이 서로 불통하면, 그것은, 겉모습만 닮었다 뿐이지 서로 죽은 사람들인 것이다. 허나,

사람이 죽은 뒤에라도 그 정신이, 혼(魂)이 서로 닿아 있다면 그 선조는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이다. 살이 있고 없는 것으로 살고 죽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정신의, 혼백의 길이 서로 막히지 않도록 늘 그 길을 닦어야 한다.

 

우리 마을 저 앞 서도역에 서는 기차를 보아라. 제 아무리 그 형체를 거대하고 공교하게

만든다고 해도 기계는 수(水) 화(火)가 없으면 못 움직이는 것이다. 수(水)는 기름이요,

화(火)는 불인즉, 이것이 들어가야 기계는 동(動)허는데, 수(水) 화(火)가 바로 혼백(魂魄)인

것이다. 저 일(日)월(月)의 밝은 기운, 맑은 기운이 몸에 들어야 비로소 사람은 물체에서 생물이 되는 법이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덩어리가 아니라, 산 것, 진정한 산 사람이 되는 것이니라.

 

참으로 어른이라면, 이 혼백의 기운이 살아 있는 사람인 것인즉, 시(視), 청(聽), 언(言), 동(動)이

모두 이에 근거해서 일어나고, 생기고 하는 사람이지. 비록 사람이 죽었다 해도, 그 기운이 살어 있으면 죽은 것이 아니니라."

 

<혼불>중에서

 

혼불을 읽다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청암부인의 말에서 그리고 청암 부인의 이미지에서

난 늘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그네의 임종 직전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다.

사람의 얼굴을 오악(五嶽)이라 한다. 이마와 코, 턱, 그리고 양쪽 광대뼈를 이르는 말이다.

그 형상을 임종직전에 보면 더욱 선명한 오악이 드러나는 것이다.

외할머니 임종직전 직후 그 모습에서 선명한 오악을 보았다. 그래서일까.

최명희 님의 글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큰 어른, 청암부인은 언제나

나의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위의 내용은 청암부인이 손부 효원에게 한 말이기도 하지만

내게 하는 일갈처럼 들렸다. 나의 폐부를 가르는 소리였다.

혼백의 길이 막히지 않도록 그 길을 닦어야 한다는 말은 심장에 박혔다.

정신을 닿도록 정신이 끊이지 않도록 ,,,,죽어도 살아 있게 하는 길은 그것 뿐이라는 것.

 

17년간을 5부 10권의 책을 만드는 데 혼을 바친 그녀의 말들은 모두가

혼백의 매듭처럼 막힘없이 사통오달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그리고

글 하나하나에 그네의 정신이 오롯이 베여 있음을 느끼게 한다.

대작을 읽는 기쁨을 누리는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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