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글마당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비 오디세이 2010. 4. 2. 10:51

"없는 사람이 살기에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삼십칠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옥중서간의 표지에 나온 글이다.

이 책은 여러사람이 나에게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다.

읽어보라고 할 때마다 나는 "네,네"대답만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읽어야지...하는 마음으로

미루고 미루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다시 또 이 책을 읽기를 권하는 한 분을 만났고

그분의 말대로 난 그대로 책을 구입했다. 아니 그전에 <신영복함께읽기>라는 책을 먼저 읽었다.

그 책을 읽다가 나는 신선생의 저서 여러권을 구입했고 먼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다.

 

<신영복함께읽기>에서 선생을 아는 많은 이들의 글을 통해 왜 신선생의 글이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읽히고 있으며 진한 감동을 주고 있는지 알게 했다. 신선생의 책들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랐으며 앞으로 고전으로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지를 말이다.

 

추천인들의 한결같은 말보다 역시 내가 한 번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백문이불여일견은 여기서도

통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가슴엔 멍이 들었다. 절제되고 또 절제된 문장들.

아직 한 번 읽은 것으로 그 당시 감옥에서의 선생의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없음을 안다.

 

신선생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선고, 다시 무기징역형을 받았고, 복역한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후 89년부터 지금까지 성공회 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얼마전 퇴직했다. 한국현대사의 많은 시간이 냉전분단체제로 인해 비극을 낳았고 그 냉전분단체제가

빚은 비극의 한가운데를 선생은 걸어온 것이다.

 

1.86평의 공간. 그 협소한 공간을 의지삼아 벽을 보면서 자신을 잊지 않고

성찰에 성찰을 하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여

자신만의 사유의 세계를 만든 선생의 의지와 삶에 대한 사랑을 옅볼 수 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자포자기 하기 쉬운 그 환경에서 자신을 놓지 않고

자신을 더욱 더 정진하려 애쓴 데 힘이 되어준 것은 선생이 편지들에서 밝히듯이 '관계론'에 있다.

감옥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들 속에 피는

사랑의 씨앗과 사랑의 열매를 허투루 넘기지 않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선생의 세계관, 철학관을 따라 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도 그렇게 되어야만 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결코 독자에게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지 않아도

독자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런 힘이 선생에게는 가득차 있다. 몸소 실천하는 삶에서부터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생의 글, 글씨, 그림들은 무언가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가득하다. 선생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 생각해보면 그것은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더 그럴 것이다.

 

영인본으로 출간한 이번 개정판은 선생이 처음 구속되고 사형을 언도 받고

감옥의 화장실에 있는 휴지(일명 똥종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청구회 추억'이라는 글을

쓴 것을 함께 실었다. 그리고 엽서에 깨알 같은 글씨로 부모님께, 형수님께, 계수님께,

등등 가족들에게 보낸 글들이 실렸다. 그리고 선생의 글씨와 그림도 간간이 실렸다.

 

고성(古城)밑에서 띄우는 글, 첫 장에 사각형의 작은 공간,

벽에 기대어 고뇌에 쌓인 젊은 영혼이 떨고 있는 듯 보이는 그림과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내일은 또 내일의 오늘일 뿐이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석양에 날기 시작한다.'라고 쓴

엽서는 그곳에서 눈을 � 수 없게 한다.

가슴으로 울게 한다.

 

서신을 주고 받으면서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드러낼 수 없는 고통. 그 산고와도 같은 고통을 끌어 안고 서로를 보듬고 살아온 세월.

특히 나의 마음에 바늘침을 꽂는 사람은 바로 신선생의 어머니였다.

부모님의 마음. 그것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나 어머니된 입장에서

신선생의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눈물을 흘렸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선생의

생각처럼 나 또한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것.

 

여러사람이 나에게 이 책을 읽기를 권했던 것을 이제 알겠다. 이 책은 두고두고 읽고

또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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