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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재개발 지구 - 김기택

나비 오디세이 2016. 4. 28. 17:15

    미아 재개발 지구



                            김기택



  집들이 덤프트럭에 실려 간다.

  트럭이 느릿느릿 흔들릴 때마다

  냉동육처럼 족발과 순대처럼 흔들리며 실려 간다.

  포클레인이 집을 떠내 트럭에 싣고 있다.

  트럭에 실리기를 묵묵히 기다리며

  집들은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포클레인이 잘 떠낼 수 있도록

  기왓장과 벽돌담, 철근과 변기, 타일과 스티로폼,

  깨진 거울과 계란판, 교회 간판과 의자가 뒤엉켜 붙어 있다.

  연탄 리어카가 겨우 들어가던 골목길도

  모과빛 불빛이 새어나오던 창문도

  발자국 소리만 나면 컹컹 짖어대던 녹슨 철대문도

  시멘트 덩어리 사이에 뒤죽박죽 끼어 있다.

  아직 도살되지 않은 헌 집 몇 채가

  거대한 집 더미 바로 옆에 서 있다.

  오랫동안 떨고 있었는지 유리창이 모두 깨져 있다.

  문짝들은 너덜거리거나 떨어져 있다.

  '사람 있음'이란 판자때기를 세워놓고

  끝까지 살며 버티던 사람들이 빠져나가자마자

  갑자기 늙어버린 집들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을 듯이 겨우 서 있다.

  '세입자 주거권도 보장하라'고 데모하던 사람들도

  다 떠나고 나니

  이젠 포클레인이 툭 건드려주기만 하면

  와르르 무너져 즉시 쓰레기가 되어버리겠다는 듯

  마지 못해 직립하고 있다.

  라면봉지, 캔, 우유팩, 생리대와 뒤섞여

  집들이 덤프트럭에 실려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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