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글마당

지는 해- 나희덕

나비 오디세이 2016. 7. 4. 10:28

  지는 해


          나희덕


  저무는 표정까지도 어두웁지 않구나

  붉은 해여,

  끌려가는 뒷모습조차 비굴하지 않구나

  녹슬은 사슬소리 내지 않으며

  저 어둠의 언덕 너머를 향하여

  제 발로 힘있게 걸어들어가는구나

  내가 한점 시름에 매여

  거리를 떠돌고 있을 때

  나의 눈물을 덥혀주는 이여,

  상처난 몸을 부끄럽게도 온통 물들이는 이여,

  끌려가면서도 오히려

  울먹이는 구름을 위로하는 네 사랑이

  하루에 이루어진 것 같지를 않구나

  타오르다 거리에 버려진 사랑이여,

  문득 뒤돌아선 너의 빛나던 얼굴이

  내게는 마지막 채찍이 되어 남아 있구나


  <<뿌리에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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