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나희덕
그리하여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날까지
흙 속에 날개가, 입이 부서져
푸른 등을 땅에 대고 눕는 날까지
이 땅에 올라온 한 마리 매미가 우는 것은
짧고 단단한 목숨 때문은 아니다
한줄기 빛도 없는 흙 속에서
나무뿌리에 입을 대고 목청을 기른 시인,
벗겨진 허물들이 습작기의 원고로 쌓이고
음지에서 올라온 그는
남은 젖을 빨다 지친 아기처럼
마침내 나무등걸을 타고 오른다
그때 매미는 거칠은 나무껍질에서
부드러움을 발견하고 만 것일까
여섯 해의 긴 침묵을 견딘 자에게만 목청을 주는 세상,
신록의 이 거친 물결 위에 누워
마지막 허물을 벗기 위하여
그는 나무등걸을 오르게 된 것일까
매미는 목청으로 다른 매미들을 모으고
그 울음소리에 암매미떼 날아온 저녁
사랑은 짧고,
새로운 애벌레들의 행진,
그리하여 나무에서 떨어져 눕는 날에는
가장 부드러운 목청을 얻는 것이다
<<뿌리에게>>, 창비.
'생각나누기 > 글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 노트에서 - 장석남 (0) | 2016.07.11 |
---|---|
송학동 2 - 장석남 (0) | 2016.07.05 |
지는 해- 나희덕 (0) | 2016.07.04 |
뿌리에게 - 나희덕 (0) | 2016.07.03 |
허공 한줌-나희덕 (0) | 2016.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