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글마당

매미-나희덕

나비 오디세이 2016. 7. 4. 22:35

  매미


        나희덕


 그리하여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날까지

 흙 속에 날개가, 입이 부서져

 푸른 등을 땅에 대고 눕는 날까지

 이 땅에 올라온 한 마리 매미가 우는 것은

 짧고 단단한 목숨 때문은 아니다


 한줄기 빛도 없는 흙 속에서

 나무뿌리에 입을 대고 목청을 기른 시인,

 벗겨진 허물들이 습작기의 원고로 쌓이고

 음지에서 올라온 그는

 남은 젖을 빨다 지친 아기처럼

 마침내 나무등걸을 타고 오른다


 그때 매미는 거칠은 나무껍질에서

 부드러움을 발견하고 만 것일까

 여섯 해의 긴 침묵을 견딘 자에게만 목청을 주는 세상,

 신록의 이 거친 물결 위에 누워

 마지막 허물을 벗기 위하여

 그는 나무등걸을 오르게 된 것일까


 매미는 목청으로 다른 매미들을 모으고

 그 울음소리에 암매미떼 날아온 저녁

 사랑은 짧고,

 새로운 애벌레들의 행진,

 그리하여 나무에서 떨어져 눕는 날에는

 가장 부드러운 목청을 얻는 것이다


  <<뿌리에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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