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창을 통해 본 풍경.
은빛 억새들이 바람에 휘청인다. 산자락에서 언덕배기에서 무더기로 또 한 줌 정도의 두께로 서서 그들은 가을을 노래한다.
그 아래로 작은 풀들 소리없이 흔들흔들. 나는 나, 너는 너, 하지만 우리는 하나.
'바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사랑을 나눌 수 없어.'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바람은 생명.
지구상에 地水火風이 따로가 아니고 서로서로 어우러져 세상을 이루었듯이 그들은 바람의 생명력을 알고 있다.
거리의 마로니에나무도 이팝나무도 서서히 그 잎들이 마르고 있다. 그래서 바람이 일면 떨어진다. 이별을 눈앞에 두고
애달퍼하는 걸까. 어떤 잎은 떨어지기 싫다는 표정이다. 아, 가을은 슬프다. 아, 가을은 또 기쁨이다. 이별은 만남을 위한 전주.
나는 너를 보내지만 또 너를 기다린다.
단풍잎이 물들기 시작했다. 은행잎이 연초록에서 서서히 노랑으로 물들고....그 색깔들이 아름답다.
그 색들이 만든 세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낙엽구르는 소리에도 까르르 웃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다른 감정으로 가을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때는 그저 웃는 것으로 끝이었다.
세월은 내가 보는 모든 것에 또 다른 의미를 주었다.
가을걷이를 한 들판에 선다. 나 같다. 지금의. 아픈 내가 어쩌지 못하고 허허롭게 바라보는 풍경.
누렇던 들판이 텅 비어 버린 것을 보는 마음. 그러나 그것은 다시 채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왜 모르리.
알면서도 사람은 감흥에 젖는다. 이슬을 머금고 본다. 사람의 감정은 물결을 타고 흐른다. 그러다가 멈추기도 하고
또 내달리기도 한다. 감정의 골을 잘 다스리는 것은 나를 잘 다스리는 길. 이성과 감정 사이에 골을 타는 일이 어디 쉽겠냐마는.
아이가 아프고 나면 안 하던 행동을 한다. 성장통을 겪는 것처럼 그렇게 아프고 나면 아이는 큰다.
마찬가지로 어른도 아프고 나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새로움. 모든 것이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면에서
아프다는 것은 그리 나쁜 것 만은 아니다.
내가 가을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다가간 느낌이다. 가을빛은 더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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