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며/바라보기

눈 오는 날의 산행

나비 오디세이 2008. 2. 1. 17:08

간간이 내리는 눈발 사이로 해가 살짝살짝 비치는 날.

사자동행 시내버스에 발을 올렸다.

사자동으로 가는 버스를 탈까, 내소사로 가는 버스를 탈까 망설이다가

우리는 사자동에서 직소폭포를 거쳐

재백이고개를 넘어 내소사로 가기로 결정했다. 눈발은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언니 해가 나오잖아. 다행일까?"

"그러게... 글쎄, 가보자!"언니 특유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대답.

우리의 복장은 맑은 날의 산행 복장으로 눈 내리는 날의 산행복장이 아니었다.

흔한 스틱없었고 아이젠도 없이 눈 오는 날의 산행을 감행키로 한 것이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단단히 차려입은 두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미끄러워요."

"조난사고나면 저희들이 가야합니다. ^^**"

그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소속 직원들이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물기 머금은 바위와 흙길이 발에 힘을 주게한다.

가늘던 눈발이 금세 시야를 가리고 산을 가리며 내리기 시작한다.

그뿐이 아니다. 눈은 내 가슴에도 쌓였다.

하얗게 변하는 가슴과 산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이랄까.

말이 나오질 않는 풍경.

그냥 바라보는 일이 있을 뿐.

저 멀리서부터 내 기억이 지워지고 있다.

허공을 지우며 오는 것이다. 장관이다.

 

직소폭포에 올라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세상 어떤 맛이 이럴까.

잠시 가늘어지던 눈발이 다시 굵어져 우리는 눈사람이 될 것 같았다.

순간 내 마음엔 두려움이 싹텄다. 그러나 옆에 있는 언니를 보며 그 맘을 감추었다.

'언니도 그럴지 모르지. 그래도 둘이 잖아. 괜찮아,,,'주문을 외웠다.

소나무에도 조릿대에도 눈이 내린다. 폭포 주변 얼음은 옅은 옥색을 띠고 있으며

떨어지는 물은 그 힘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깊은 골 계곡물은 투명해서...너무나 맑아서 그 안에 내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멈추어버린 시간. 그 순간 속으로 우리는 들어갔다가 나왔다. 아무 말 없이.

눈.... 눈..... 눈.....

눈송이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 속을 헤메이듯 서로 말이 없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의 우리가 다른 곳에 있는 이상한 느낌.

둘이서 그렇게 산행을 하는 것이 너무 좋아

우리는 말을 아낀다.

우리는 각자 구운몽의 '양소유'가 되어 보기도 한다.

허나 잠시다. 서포가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재백이고개, 너럭바위 위에서

눈보라와 함께 유자차에 빵을 먹으며 기운을 낸다.

평상시 먹던 유자차요 빵이건만 그 순간에는 다른 맛이었다.

흉내 낼 수 없는 남다른 맛을 느낀 후 

기운을 북돋아 다시 오른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기고 또 넘기고,,,

 

네 사람이 다시 내려오며

"저쪽이 위험하여 우리는 다시 돌아가네요. 잘 생각하고 가세요."

 

"우리가 가서 보자. 거리가 이쪽이 더 가깝잖아."

"그래."

원래대로 산행길을 잡고 가다보니 우리가 온 길보다 미끄럽지 않았다.

바람이 세어서 걱정했지만 그것도 이겨냈다.

내소사에 도착하니 푸르게 푸르게 서있는 전나무 숲이 향기를 발하고 있다.

내소사 대웅전 앞에서 합장. 무사히 산행할 수 있도록 해주어서 감사합니다고.

 

오늘의 눈보라 속 산행은 잊을 수 없는 한 페이지로 남아

협곡에 갇혀 힘겨울 때 넘겨 볼 수 있도록 저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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