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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트에서 - 장석남

나비 오디세이 2016. 7. 11. 07:33

   옛 노트에서

                  장석남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