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며/바람

산에 간다

나비 오디세이 2007. 6. 9. 21:33

지금 우리 산하에는 인동초향이 가득하다. 하얗게 피던 꽃이 서서히 진한노랑색으로 변해가면서

그 향이 더욱더 짙어진다. 인동덩굴이 산하에 뿌리는 향기를 맡으며 걷는다. 인동덩굴 줄기는

강하다. 덩굴식물들은 왼쪽으로만 감고 올라가는 게 있고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게 있다.

인동은 왼쪽으로만 감고 올라간다.

 

산에는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즐비하게 피어 있다. 찔레, 엉겅퀴, 제비꽃, 등등. 그 수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매년 쌓인 활엽,침엽이 흙과 어우러져 폭신한 융단 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 누가 있어

나에게 그런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신의 손길에 감사한다.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주지 않아도 나에게 주는 이는 많고도 많다. 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나도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딱새가 소나무 꼭대기를 가로지르며 날아가더니 가느다란 가지 끝에 가느다란 다리로 나무시 앉는다.

참 이쁘다. 고개를 들고 한참을 본다. 목뒤가 뻐근하다. 그래도 시선을 놓을 수 없다.

소나무 숲머리에는 작은 박새들이 나뭇가지인지 새인지 모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 작은 새. 새끼들이 내 손가락 크기만 하다. 소나무 틈새를 자유로이 유영하듯 날아간다.

경이롭다. 저들의 세계는.

 

햇마늘을 깠다. 마늘 특유의 향이 진하게 배였다. 마음에도 몸에도.

따글따글한 마늘이 유백색을 띠며 물기를 머금은 듯 웃는 표정은 참 이쁘다. 김용옥 선생님을 생각나게

한다. 마늘을 깔 때마다 그런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마늘의 외피가 어디 그렇게 따글따글한 내면을 

간직하고 있으리라고 까기 전에는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알싸한 맛이 몸에는 얼마나 좋은가. 톡 쏘는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몸이 깨어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선생님의 가르침에는 톡, 탁, 뚝, 똑,

소리가 난다. 또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눈물나게 한다. 동서남북 사방위를 넘나들며

동양사, 서양사, 현대사, 고대사, 중세사, 인물전, 등등 총망라하여 들려주고 때려준다.

 

사고의 정지를 깨우친다. 고정관념에 묶여 있는 정신을 흔들어 준다. 흔들리면 경각심을 갖게 되고

경각심을 갖게 된 순간 자각하게 되며 자각하면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또다시.

 

산에 오르면 머리의 피순환이 원활해지면서 사고는 자유로워진다.

산에 자주 가게 된다. 생각하면서.

 

'일탈을 꿈꾸며 > 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산책로는  (0) 2007.08.17
뜨거운 사람  (0) 2007.06.26
자전거를 타고  (0) 2007.06.06
악몽인가  (0) 2007.05.27
이팝나무  (0) 2007.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