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글마당

그 노인이 지은 집/ 길상호

나비 오디세이 2017. 12. 3. 10:32


 그 노인이 지은 집


                   길상호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을 심고

 세월에 알맞은 나이테의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발랐다

 벽이 마르면서 갈라진 틈새마다 스스스, 풀벌레 소리

 곱게 대패질한 참나무로 마루를 깔고도 그 소리 그치지 않아

 잠시 앉아서 쉴 때 바람은 나무의 결을 따라 불어가고

 이마에 땀을 닦으며 그는 이제 지붕으로 올라갔다

 비 올 때마다 빗소리 듣고자 양철지붕을 떠올렸다가

 늙으면 찾아갈 길 꿈길뿐인데 밤마다 그 길 젖을 것 같아

 새가 뜨지 않도록 촘촘히 기왓장을 올렸다

 그렇게 지붕이 완성되자 그 집, 집다운 모습이 드러나고

 그는 이제 사람과 바람의 출입구마다 준비해둔 문을 달았다

 가로 세로의 문살이 슬픔과 기쁨의 지점에서 만나 틀을 이루고

 하얀 창호지가 팽팽하게 서로를 당기고 있는,

 불 껴질 때마다 다시 피어나라고 봉숭아 마른 꽃잎도 넣어둔

 문까지 달고 그는 집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못 없이 흙과 나무, 세월이 맞물려진 집이었기에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 아귀를 맞춰나갔다

 토닥토닥 망치 소리가 맥박처럼 온 집에 박혀들었다

 소리가 닿는 곳마다 숨소리로 그 집 다시 살아나

 하얗게 바랜 노인 그 안으로 편안히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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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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