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김혜순
방바닥에 엎드려 내 그림자에 입을 맞추네
그림자의 귓바퀴를 물어뜯네
내 그림자의 눈이 반짝 켜지네
내 상반신엔 평생 한 번도 씻지 않은
낙타 같은 사람
내 하반신엔 깊은 바다 속으로 내 몸을 끌고 헤매는
검은 상어 같은 사람
숨어 있네
나는 그런 시큼한 채찍을 든
오래된 사람들에게 반씩 먹힌 여자
그리하여 고단한 내 얼굴엔
내 후생의 몸뚱어리, 모래 언덕의 요염한 곡선
멀거니 바라보는
퉁방울 같은 낙타 눈동자 열려 있고
내 발목엔 낳지 않은 아가들의
수백 개 손톱 같은 비늘들이 따갑게 박혀 있네
평생 떨어지지 않네
한 사람이 저 멀리 사막으로 가자고 내 팔을 흔드네
한 사람이 저 멀리 바다로 가자고 내 다리를 묶네
따끈한 혀가 내 손가락보다 먼저 얼어붙네
춥다 춥다고 말을 더듬네
생리통이 모질게 하반신을 휩쓰네
아프다 아프다고
반쯤은 사막에
반쯤은 심해에
붙들린 몸을 뒤트네
내가 내 그림자의 귓바퀴를 물어뜯네
하루 종일 나는 나를 헤엄치네
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인어는 자가 생식하는 걸까?
<<당신의 첫>>, 문학과 지성사, 김혜순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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