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글마당

김혜순-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나비 오디세이 2018. 7. 23. 10:03

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김혜순

 

 

방바닥에 엎드려 내 그림자에 입을 맞추네

그림자의 귓바퀴를 물어뜯네

 

내 그림자의 눈이 반짝 켜지네

 

내 상반신엔 평생 한 번도 씻지 않은

낙타 같은 사람

내 하반신엔 깊은 바다 속으로 내 몸을 끌고 헤매는

검은 상어 같은 사람

숨어 있네

 

나는 그런 시큼한 채찍을 든

오래된 사람들에게 반씩 먹힌 여자

 

그리하여 고단한 내 얼굴엔

내 후생의 몸뚱어리, 모래 언덕의 요염한 곡선

멀거니 바라보는

퉁방울 같은 낙타 눈동자 열려 있고

내 발목엔 낳지 않은 아가들의

수백 개 손톱 같은 비늘들이 따갑게 박혀 있네

평생 떨어지지 않네

 

한 사람이 저 멀리 사막으로 가자고 내 팔을 흔드네

 

한 사람이 저 멀리 바다로 가자고 내 다리를 묶네

 

따끈한 혀가 내 손가락보다 먼저 얼어붙네

춥다 춥다고 말을 더듬네

생리통이 모질게 하반신을 휩쓰네

아프다 아프다고

반쯤은 사막에

반쯤은 심해에

붙들린 몸을 뒤트네

 

내가 내 그림자의 귓바퀴를 물어뜯네

하루 종일 나는 나를 헤엄치네

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인어는 자가 생식하는 걸까?


 <<당신의 첫>>, 문학과 지성사,  김혜순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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