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굴

하늘 바다

나비 오디세이 2005. 12. 28. 04:50

학창시절 시골 버스 정류장은 주말이면 상경하는 어린 자녀들을 배웅하는 부모님들의

바리바리 챙긴 보따리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군단위에서 중소도시로 유학을 보낸 자녀들을 위한 부모님들의 마음의 보따리들이

줄을 서고 차가 들어오면 그 보따리들은 버스 밑바닥 동굴같은 입속으로 하나둘

사라진다. 

 

버스에 올라타면 부모님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금방 다시 나타나서 내미는 봉투에는 군것질 거리가 담겨있다.

그리고도 모자라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출발하고도 한참을 손을 흔든다. 그것이 부모님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나의 상경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때는 느끼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시야에 어머니의 작은 어깨가 들어온 날이 있었다.

그날도 주말이 되어 난 서울에서 집으로 다니러 왔다.

 

나는 초등학교6학년부터 중학 1년까지 키가 제일 많이 컷던 것 같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농구를 시작해서 (재미로 했던것이) 서울로 유학까지 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보내기 싫어 하셨고

아버지는 자식들 가운데 특별한 자식이 있어도 무방하리라 여겨

서울행을 결정했다. 그때 나는 부모님을 떠나 있는 두려움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로 가는 것이 즐겁고 큰물?에 놀면 뭔가 다르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어린게 뭘 몰랐던 거다)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 사는 것은 힘들었다. 그때 쓴 일기장이 지금도 있다.

그것을 보고 동생들이 울았단다..나중에야 알았지만...거기에 내가 힘든 날

울며 쓴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니...모두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더만..^^

지금도 그 일기장을 보면 눈시울이..ㅎㅎ

 

그날 엄마는 나를 보내기 싫어 하는 눈빛이었다. 나도 가기 싫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조용히 마음을 닫아 두고서 할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짐을 싣고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듯 움직였다. 엄마는 버스가 떠나고도 한참을 그렇게 그 자리에

붙박이 인형처럼 서 계셨다.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서울에 도착해서 전화를 걸자 엄마의 목소리는 다시 밝아져 있었다. 그녀 특유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잘하고 오니라...

 

단지 그 목소리만 듣고 난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웃고 지냈다.

 

힘겨운 일상에서 다시 돌아갈 품안이 있기에 그런 모든 일들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의 고향이 없었다면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부모님의 끝없는 사랑이 존재하는 고향에는

나의 희망과 꿈이 커갈 수 있도록 밑바탕이 되어주었고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의 울타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내가 어디에 가든

하늘 바다처럼 넓은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임을 그때는 깨우치지 못했다.

그저 내가 힘든것을 버티는 것은 내가 의지가 강해서려니...자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돌아갈 자리가 있었다는 것이

결국 마음의 자리가 있다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이 나를 버티게 한

힘이었음을 이제는 느낀다.

 

떠나고 없는 빈자리이지만

결코 비어 있지 않은 자리. 돌고 돌아 피어나는 홍매화처럼 그렇게 돌고 돌아

내게 오는 그 자리이다.

'초록동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 단상  (0) 2006.01.04
을유년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0) 2005.12.31
작은 새의 노래로 다가서는 그녀  (0) 2005.12.21
그날  (0) 2005.12.16
찬란한 태양의 노래  (0) 200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