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굴

아침 단상

나비 오디세이 2006. 1. 4. 07:47

아침이에요. 날씨는 좋아요. 첫눈이 내리기 시작한후부터 계속 15일 동안 내린 눈이

지금까지 쌓여 있어요. 햇살이 비추고 기온이 내려갔어도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녹지를 않아요. 아파트 응달진 곳에는 두꺼운 얼음과 잔설이 섞여서 아직도 하얀 세상이에요.

이른 아침 일어나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새삼 그 눈(雪)이 눈(眼)에 들어 왔어요.

그러면서 당신 계신곳이 떠올랐어요.

 

그곳에도 잔설이 남아 있겠죠. 아직도 덮고 있을 그 이불을 걷어 버릴 수는 없겠지요.

하얀 이불이 따스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세상. 그곳에 계신 당신이 언제나

사랑스럽고 장미향 가득한 공간으로 불러 들이는 듯 하답니다.

 

흘러가는 물결속에 당신을 묻어 두고 시공을 초월해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외쳐도

어떤 때는 허공의 메아리처럼 허무하게 들린답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전달 될까?

하는 의구심과 이런 내 마음이 가식과 가무가 아닐까? 내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기도 한답니다.

 

알 수 없는 마음. 당신을 향한 끊임없는 갈구는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깊어만 갑니다.

왜일까요? 당신 살아 계시다면 그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짜증과 투정이 더 많았을까요? 아니지요. 당신과 나는 언제나 오손도손 이야기도 하고

서로를 아껴주며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는 모녀지간이었지요. 그런 당신은 내게 늘 말했지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능력이 있다고...그래요. 그런 내가 요즘에는 좀 변한 듯해요.

가끔은 돌출행동을 하고 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달프기도 해요.

 

세상의 바다에서 내가 헤엄치고 있다는 것이 슬플때도 있어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한쪽면만을 바라보지 않고 언제나 양면을 띠고 있어요. 그리고 그 양면성은 점점 부피를

더해가고 있어요. 당신도 느끼셨나요. 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그 누구보다 더 잘 터득하셨던

당신.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기억되게 하신 당신.

당신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다보면 내 삶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말없는 가르침을 주신 당신은 나의 영원하신 스승이십니다.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신 것은 당신이나 당신곁을 지키신 아버지나 같습니다.

유약하게 보이나 결코 유약하지 아니하고

부러질듯 보이나 결코 부러지지 아니하는

당신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자식들에게는

그 어떤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보다도 소중하답니다.

 

억지로, 강제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음과 몸에 스며듭니다.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다가도 장님이 눈을 뜨듯 어느 순간 당신들의

사랑의 훈계와 가르침은 인생의 스승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아무리 많은 눈폭탄을 맞았어도 시간이 흘러 햇살이 드리우면

천천히 천천히 녹아 내리듯 당신들의 사랑도 우리들 삶에 그렇게

녹아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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