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듯이 다닥다닥 붙어서 생존하고 있는 홍합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한 번 살아보세나.
내가 너를 시기하지 아니하고 너도 나를 시기하지 않으며
잘한 일은 칭찬하고 못한 일은 다독여주며 용기를 심어주는 관계가 되어보세나.
어려울 땐 서로돕고 행복할 땐 그 기쁨을 같이 나누세나.
저녁때가 되어도 옆집에서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면 눈치를 챌 수 있도록
마음을 써보게나. 그 얼마나 아름다운 미풍양속인가.
언제나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기 쉬운 인생이지만 잠시 눈을 돌려 세상을 본다면
나보다 못하고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가를 알게 될 것이네.
먼 날을 내다보고 처세를 한다면 앞 날만을 내다보고 행동하는 것보다 현명한 자라네.
역사의 현장에서 똑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한 사람은 현숙하고 지혜로운 아내를 만나
화를 면했다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화를 입었다네.
지혜로운 아내도 칭찬받을만 하지만 남편도 귀를 열어 아내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마음 문을 열어 놓았으니 칭찬해 마땅하지 않은가.
자고로 문이라는 것은(어떤 문이든) 열고 닫음의 시기가 있고 장소가 있는 것이라네.
1519년 12월 20일 37세의 나이에 능주에서 중종으로부터 사사의 명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조광조의 곁에는 양팽손이 있었다. 나이는 조광조보다 9세가 어렸으나 친구처럼 지내고
학문과 뜻이 통하는 사이로 조광조가 능주에 유배되었을 때부터 사사당하기까지 곁에서 지키고
시신을 가매장하고 선산으로 모시도록 한 이가 양팽손이었으니 만약에
양공이 없었다면 조광조의 시신은 굶주린 늑대와 이리의 먹이가 되어 갈가리 찢기우고
말았으리라. 붕당죄를 저지른 죄. 대역죄인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태로운 일이었으며 어명을 어긴 죄로 다스려진다는 사실을 양공이 몰랐을리 없을 터.
그런것은 두사람의 우정에 신의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음이니
참으로 아름답도다 양공의 신의여!
신진사람파들의 대를 물린 참화는 우리 역사에서 커다란 손실이라 여겨진다. 정몽주,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모두가 격살당하고 사사당하고 참시당하고... 수많은 사화에 연루되어
죽은이들의 영혼이 얼마나 많을까.
역사도 대물림되는가. 수구세력에 맞서는 신진세력의 힘은 늘 무모한가. 급한물살인가.
역사에 만약이란 없음을 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이다. 후세사람들은 그 만약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를 살아가는 말을 또 한번 새긴다.
그리고 미래를 계획하고 비전을 가지는 일.....
마음이 맞는 친구와 홍합을 푹 삶은 국물과 홍합 한 점 한 점을 먹으며
소주잔이라도 기울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