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생각뿌리

숭고(崇高)함에 대하여

나비 오디세이 2006. 5. 22. 22:01

나는 언제부턴가 숭고(崇高)라는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숭고한 사람, 숭고하다는 것, 숭고한 것,,,등.

 

나에게 숭고한 사람은 나의 어머니였다.

숭고함에 대한 막연한 인식에서부터 디테일한 인식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숭고하다는 것은 사물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형태없이 원시적으로 무질서하게 쌓여져 있고, 얼음, 피라미드가 있는 산더미나 또는

성난 바다 등등)처럼.

사물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우리가 주시하는 웅장한 웅장한 사물로 인해

'모든 감각의 단위'를 뛰어 넘는 감탄하는 힘, 정신적인 힘임을 발견하게 된다.라고.

<의지, 의무, 자유>의 저자 루이 밀레는 말했다.

그는 또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우리 존재 내에서 이 숭고한 힘을 느끼는가?

그것은 우리가 충동적인 만족에 더 이상 예속되어 있지 않을 때,

이끌려 다니는 대신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결정할 떄이다.라고.

 

우리 내부에서 숭고한 것, 그것은 완벽에 대한 자유롭고 의지적인 열망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내면의 힘이 있다.

 

플라톤은 우리 존재를 이루는 세 가지 원칙을 기술 했는데,

이성, 투모스(thumos), 에피투미아이(epithumiai)이다.

이성은 우리를 지도하고 선으로 이끌어주며, 투모스는 마음과 용기에 대한 관대한 열정을 말하며, 에피투미아이는 괴물의 일종처럼 정열적이고 폭력적이며 일관성이 없는 성향을 말한다.

 

인간의 의무는 이성이 에피투미아이라는 괴물을 지배할 수 있도록 사자에 비유되는

투모스를 이성에 봉사하게 하는 것이다.

 

이성, 투모스, 에피투미아이가 우리 존재를 이루는 세 가지 원칙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투모스가 더 강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에피투미아이가 더 지배적일지도 모른다. 양면성을 띠고 에피투미아이의 성향을 바닥에

깔아 두고 감추어 놓고 이성과 투모스를 더 많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그런 상태인지도 모른다. 뤼나티크의 상태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정리해주고 녹여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랑이다.

결국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 그것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아이의 미소에서 가족에 대한 애틋함에서 벌레의 행동을 관찰하는 마음에서

꽃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자연의 변화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기도 하며

자연의 변화에서 오는 아름다운 눈이 떠졌을 때

그런 때 숭고한 미를 발견하게 된다. 사물에 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물을 통해서 나에게, 나의 내부에 내재해 있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끌어 내게 되는

것이다. 그 끌어 내림에서 충동이 아닌, 충동적인 만족에 예속되어 있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 그 스스로 결정하기의 상태. 그 만족함이

있는 순간에 느껴지는 것이 숭고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것을 나의 어머니와 나의 아버지에게서 발견하기도 했다.

 

"생이 성공했다고 기쁨은 항상 알리고,

기쁨이 있는 곳은 어디에서나 창조가 있다.

인간의 창조성은 생이 있는 동안 내내 계속된다.

그것은 자신에 의한 자신의 창조이자

적음에서 많음을, 무에서 유를 얻고, 세상에 있었던 풍부한 것에

끊임없이 보태는 노력을 통한 인격의 확대이다."라고

베르그송은 말했다.

 

창조의 세계에는 숭고함이 가득함을...생이 있는 동안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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