痛通統/서랍

겁없는 달팽이

나비 오디세이 2006. 5. 25. 20:57

언젠가 하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도로가에 떼지어 달팽이가 나와 있었다.

그때 그들은 포크레인의 강압에 못이겨 뛰쳐 나왔을 것이다.

 

요즘에는 잦은 비로 거리에 달팽이가 많다.

비가 오고 난 뒤 또 이른 아침 이슬 머금은 거리에도 달팽이는 나와 있다.

풀숲에서 뛰쳐 나오는 이유가 뭘까?

나는 걱정이 된다.

여기저기 치여 죽거나 밟혀 죽은 달팽이가 눈에 띄면서부터 느릿느릿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그들이 남일 같지 않아 내 눈에 띄는 달팽이들을 다시 풀숲으로 보내곤 했다.

그런데 그게 잘하는 일일까???나도 모르겠다. 그 부분에서는.

나의 오만이거나 오판인지도 모르는데...그러나 밟혀서 죽는 것보다는

나의 오만과 오판에 의해 다시 이슬 머금은 풀숲으로 가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유히 거닐던 달팽이들이 내가 손을 갖다 대면 놀라서 움츠러 든다.

껍질속으로 몸을 집어 넣고 나오질 않는다.

그런데 어떤 겁없는 달팽이는 내가 손으로 잡자 내 손안에서 꿈틀대고

내 손안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내가 손에 들고 달리기를 했다. 공중에서 비행을 하는

기분이었을 텐데...기분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 손을 들여다 본다.

여전히 예의 그 겁없는 달팽이는 내 손안에서 놀고 있다. 자기집인 것처럼.

신기했다. 유독 다른 그 달팽이가 좋았다.

한참을 그렇게 나와 함께 달렸다. 그리고 금방 친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생각을 해보니 그 겁없는 달팽이를 제 집에 놓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쉽지만 작별인사를 했다. 잘 살아라.

 

내가 알고 있는 달팽이에 대한 상식은

자웅(雌雄)동체의 미물이고 느릿느릿 거니는 몸짓이 아련하고

자웅동체이면서 그들의 성행위는 세상 그 누구보다 길고 아름답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미물이 나를 감동시켰다.

 

우리 아이도 달팽이를 좋아 한다.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편견없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다. 그 편견없는 시선에 어른들이 가하는 선입견과 편견이 가해지면

그때부터 아이들의 눈은 예전과 다르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그 생김이 우스쾅스럽고 못생겼고 다양한 생김새를 하고 있을

지언정 그들은 세상에서 그들만의 할 일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작은 미물일 지라도.

 

달팽이들을 보면서 조세희 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장이가 떠올랐다.

거리에 나온 달팽이가 터져 죽은 것처럼 난장이도 그렇게 거인들의 세상에서

거인들에게 짖밟혀 죽었다. 자살을 했지만 그것은 타살과 같은 것.

땅에 붙어 살아 보고자 했으나 결국 하늘을 향해 쇠공을 쏘아 올리고 죽은 난장이.

난장이는 아들딸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다. 자신이 남아 있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으로 짐을 덜고자 했던 난장이. 그러나 난장이가 가고 그 죽은 난장이의

아들딸과 그의 친구들은 더욱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진다.......

 

우찬제씨의 신판 해설에 나온 내용중 몇 가지다.

소설의 구도를 대립적 세계상과

그 초극의 상상력, 뫼비우스의 변환과 카오스모스의 시학으로 정리해서 설명한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난장이로 상징되는 못 가진 자와

거인으로 상징되는 가진 자 사이의 대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

 

이 소설이 현대의 살아 있는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그 문학성에 있을 것이라 한다. 그의 치열한 현실 인식이 도저한 문학적 실험 정신과

어우러져 과연 잘 빚은 항아리 모양으로 생명의 활기를 지피고 있는 형상이라고도 했다.

짧은 문장의 절묘한 결합으로 창조해낸 아주 새로운 이이기 스타일,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의 접합, 문학의 사회성과 미학성(문학성)의 결합,

현실과 이상의 산업 시대 신화적 교감과 긴장 등등의 측면에서

작가는 나름대로 카오스모스의 소설 시학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던 것.

 

대립의 구도. 그 안에서 길을 모색하려하는 이들이 있다.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난 달팽이를 주워서 그들만의 집으로 던져 주었던 것일까.

아주 사소한 힘으로. 그 힘으로 세상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안다. 그래도 작은 변화의 바람이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듯

미미한 힘일지라도 행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심.

 

겁없는 달팽이 한 마리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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