痛通統/서랍

흔들리는 이유

나비 오디세이 2006. 2. 2. 10:10

1990년대 초였던가. 

무엇때문인지 모르지만 그저 혼자서 사내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기억이 난다. 그 시간에 홀로 였다. 그렇다. 오로지 나만 홀로 11월의 자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햇살은 가득했지만 왠지 쓸쓸함이 가슴으로 파고 드는 그런 시간이었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다.

고개들어 바라본 곳에 춤을 추듯 요동치는 후박나무 잎사귀들이 내 시야에 크게 와 닿았다.

왜 그렇게 흔들리는 거니? 나뭇잎은 그저 미소로만 대답했다. 나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답을 했다. 그래 나뭇잎은 그대로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렇게 가만두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뜻을 세우는 시기도 지나고

내 얼굴에 책임을 지는 나이가 되고보니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때문이 아니라

나뭇잎 자신이 흔들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만두지 않는 것은 바람이 아니고 멈추지 않는 자신의

끊임없는 욕구와 절제의 사이의 갈등이며

희망과 절망의 계곡사이에서 꿈틀거리는 정신이며

사랑과 미움의 바다에 흔들리는 돛단배라는 사실임을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이것은 지식과는 다른 것이다. 경험에서 얻어지는 앎. 앎에서 얻어지는 삶의 지혜.

그 폭넓은 삶의 진수(眞隨)는 지혜에서 얻어지는 행위, 행동에 있음을 알겠다.

지극히 높은 도에 오르는 것도 지극히 낮은 땅에 임하는 것도

모두가 먼저 행함에 있음이라 여겨진다. 행동하는 사고인, 사고하는 행동인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 여겨진다.

어쩌면 이것은 필요조건이 아니라 필요 충분조건일지 모른다.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책을 보다 보면 그것은 꼭 어린이만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느낀다.

소 세마리와 사자라는 동화를 읽어주다 문득 우리는 꼭 그와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검은소 황색도 붉은 소 세 마리는 서로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사자가 덤벼들면

힘을 합해 뿔로 막아 내었다. 사자가 머리를 썼다. 소를 잡을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들이 서로 힘을 합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자는 그들을 이간질 시켰다.

사자의 말만 들은 소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결국 사자에게 먹히고 말았다.

우리는 사건이나 사물을 판단할 때 소들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일상에서도 그랬고 사물을 겉면만 보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은 나뭇잎의 의지가 아니라 바람의 의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깨달은 순간에도 또 우를 범하기도 한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부정이 자기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잊지 말고 말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痛通統 > 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자 메시지  (0) 2006.05.15
공감  (0) 2006.02.24
사랑한다면  (0) 2006.01.31
싸가지  (0) 2006.01.23
홍합군집처럼 붙어 있는 생각더미  (0) 2006.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