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생각뿌리

어머니 나무

나비 오디세이 2006. 6. 16. 10:03

  미국인 칼 밀러는 1979년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하여 천리포에 수목원을 조성했다. 그는 나무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했고 마치 자식을 기르듯 종자를 채집하고 온 정성을 들여 생명을 가꿔 냈다. 천리포 수목원은 세계 관련 학회와 유명 수목원들로부터 주목을 받으며, 2000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어머니에 대한 민병갈 원장의 효심은 웬만한 한국인 효자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극진했다. '라스베리 펀'이라는 목련 한 그루에서 그의 효심을 잘 읽을 수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민 원장의 수목원 일과는 이 목련을 찾아 아침 인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굿모닝, 맘!" 민 원장의 인사말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러면 이슬을 가득 머금은 라스베리 펀은 영롱한 물방울을 굴리며 아들을 반긴다. 라스베리 펀은 민 원장의 어머니인 에드나 여사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목련이다. 원래 품종은 레오나드 메셀이라는 외국산인데, 1987년 씨앗을 들여와 파종한 것이 재배 과정에서 꽃잎이 많고 색깔이 다른 변이체로 나타났다. 민 원장은 1994년 자신이 발견한 이 새로운 변종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나무딸기의 이름을 붙여 국제 목련학회에 보고한 것이다.

 

  라스베리 펀을 바라볼 때마다 민 원장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젖었다. 6년 동안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던 이 목련은 민 원장이 별세한 이듬해 봄엔 꽃을 피우지 않았다. 나무들의 '반란'은 가을에도 계속됐다. 시럽을 만들기 위해 민 원장이 애지중지 가꿔 온 블루베리가 꽃을 안 피워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이다. 나무에게도 슬픔을 견뎌 낼 시간이 필요했던가 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임준수, 김영사 중에서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의 나무같은 무엇이 내게는 있는가.

흔적을 붙들고 있긴 하지만 엄마가 어떤 나무를 사랑했는가를 알진 못했다.

엄마는 살구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아니 붉은 장미를 보면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초록색을 좋아 하셨다. 과일은 배를 좋아 하셨다. 음주가무중에 빠지지 않았다.

부부동반 계모임에 가시면 엄마가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엄마는 청(聽)이 좋아."

그러면서 미소지으셨다.

 

엊그제는 있었던 시상식에서 엄마 아빠의 부부동반 계모임에 참석하시는 한 분을 만났다.

아버지와 함께. 대뜸 그분은 말씀하셨다.

"엄마를 많이 닮았네."

 

나도 커가면서 엄마를 닮아 가나보다.

어릴 적에는 아빠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내 마음 속 라스베리 펀은 언제나 이슬방울을 머금고 반긴다.

 

'생각나누기 > 생각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으로 가는길  (0) 2006.07.07
사랑  (0) 2006.06.26
당신은 나의 힘, 나의 미토콘드리아  (0) 2006.06.14
너와 같다면  (0) 2006.06.08
숭고(崇高)함에 대하여  (0) 2006.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