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굴

이름에 대하여

나비 오디세이 2006. 6. 25. 22:10

"이름만 보고 남자 환자 인줄 알았습니다."

수술 준비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보조 간호사가 대뜸 하는 말이 이 말이었다.

 

나는 내 이름이 남자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살진 않았다.

그런데 늘 내 이름에 대해서 남자가 아니었네요,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가끔은 이름이 예쁘시네요,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남자분인줄 알았습니다."라는 말이다.

 

언니는 이름이 '수영'인데 영장까지 나왔다. 우리집 딸들의 이름에서

남자 냄새가 나는가보다. 딸이 많기는 하지만 남자아이를 원해서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은 아니다.

 

나는 태어난 해(年)와 시(時)와 상관이 있고, 언니는 壽(목숨 수) 永(길 영)이다.

언니는 태어나서부터 많이 아팠고 큰 병치레를 했다. 그래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어떤 연유에서 이름이 지어졌건간에 남자로 오해받는 이름인 것이다. 우리 자매는.

 

나는 어릴적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나의 이름이 지어진 이유에 대해 자주 들었다.

그래서인지 내 이름에 대해 어떤 긍지와 자부심을 갇고 자랐던 기억이 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스스로 헤쳐 나가는 힘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곤 했으니까.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오기와 각오가 가슴속 저 밑바닥에서 밀고 올라오면 다시 기운을 얻었다.

그리고 안 될 것 같던 일도 해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의 말씀과 어머니의 말씀을. 그것은 큰 자극이 되었다.

나도 모르는 힘이 내부에서 나오는 것은 차곡차곡 쌓여 있는 어떤 기(氣)의 분출 같았다.

 

내 아이의 이름을 지어놓고 이름에 대해서 또 한번 생각했다.

내가 나의 이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하며

아이에게도 이름에 대해 설명해주고 어떤 뜻을 가졌는지 설명해줄 필요를 느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가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알려주면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내부로 스며들어 어른되어 큰 힘이 되어 줄 것을 믿기에.

 

냉장고에 아들의 이름을 크게 프린트해서 붙여 놓았다. 한자랑 덧붙여.

그랬더니 아이는 몇번이고 물어보고 또 물어본다. 설명을 이해하든 못하든

몇번이고 대답했다.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이쁘다. 사랑스럽다.

 

예년 같으면 그녀의 초록동굴에도 찾아갔을 텐데 올해는 좀 늦게 가겠다.

아직 산에 가기에는 회복이 덜 된 상태이다. 그녀의 동굴에 가고 싶은데...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면 나는 달려가 안겼다. 그런 상상으로 초록동굴에 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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