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굴

당신의 밭

나비 오디세이 2006. 7. 17. 17:11

신록이 푸를대로 푸르는 7월입니다. 녹음의 정점.

눈은 시원하다 못해 얼음물에 담근 것처럼 시렸습니다.

어머니,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도로를 거닐 때였지요.

문득 시선을 잡는 당신 닮은 여인들이 있었답니다.

그녀들은 뙤약볕에서 허리를 펼줄도 모르고 열심히 땅을 일구고 있었지요. 예전의 당신처럼요.

그 밭에는 콩, 옥수수, 땅콩, 고추, 가지, 고구마 등 온갖 식물들이 오손도손 아롱이다롱이 자리를 잡고

지나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지요.

 

잘자라던 그들에게 폭우가 내렸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어버린 그 밭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노인들의 모습은 곧 당신을 보는 듯했습니다.

하늘이시여! 왜 이리 야속하신가요? 이렇게 한탄할 법 하지만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합니다. 하늘을 땅을...그리곤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예전의 당신처럼.

 

당신의 친근한 벗이었던 대문앞 밭다랭이. 땅과 대화를 나누고 식물과 대화를 나누며

철마다 그 땅에서 나오는 곡식들을 밥상에 올리셨던 당신. 그 손길을 받아 먹고 자란

자녀들은 요즘 말하는 무농약 무공해의 음식들을 먹고 자랐지요. 더불어 당신의 사랑이 가득한

그 곡식들은 튼실할 수밖에 없었지요.

어느 해였지요. 한귀퉁이에 토마토를 처음 심으시고 자식 돌보 듯하다가 

푸른 기운, 붉은 기운이 도는 그 알맹이를 들고 웃으시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것이 어디 당신을 위해서였겠습니까. 오로지 가족들을 위한 마음이었음을 ...

 

땅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당신의 허리를 펴지 못하게 했지만

당신의 웃음소리는 목젖을 울리고 담장을 넘고도 남음이 있었지요. 소탈하게 또 멋스럽게.

당신의 그 초록마음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갈 것입니다.

당신만의 독특한 부드러움과 자애로움이 대대손손 이어질 것입니다. 땅심을 품고 사신 당신을 기리며..

 

당신의 품은 가녀린 여인의 작은 가슴이었을지라도

당신의 마음 밭은 드넓은 대양이었지요. 하늘이었지요.

우주적 사랑을 가지셨다는 것을 이제 느낍니다. 내 자식만을 품으려 하지 않으셨고

그 누구든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이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았지요.

 

당신의 그 밭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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