痛通統/서랍

안개 자욱한 아침

나비 오디세이 2006. 7. 19. 23:26

  안개는 묘하고 신비한 영상과 실루엣을 만들어 낸다. 맑은 아침에 투명한 빛을 내며 서 있던 적송무리가 오늘 아침에는 젖은 안개에 에둘러 싸여 귀기(鬼氣)를 띠었다. 금방이라도 나의 심혼이 튀어 나와

같이 노닐자고 손짓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소나무 뿐인가. 옆에 있는 기와 지붕도, 이제 막 지은 '00가든'이라는 식당도 안개에 뒤덮여서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꼭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풍경들을 연상하게 했다. 히스클리프의 병적 사랑과 캐서린이 죽은 뒤 나타나는 영상들이 그러하다.

 

  장맛비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잠시 비보다 안개에 갖힌 아침을 맞은 오늘. 새벽을 열고 달려 나온 사람들은 일어나자마자 하늘을 보았나보다. 나처럼. 매일매일 같은 날이고 단조로운 길이라면 재미없을 산책길이겠지. 비도 오고 눈도 내리고 안개도 끼고 맑고 청아한 아침이고....이렇게 돌고 돌아 아침을 여는 새벽이 있으니 록 음악을 듣는 것처럼, 클래식을 듣는 것처럼, 째즈를 듣는 것처럼,,,,매번 다른 음악을 접하는 세포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이겠지.

 

  귀기(鬼氣)때문이었을까...스트레칭을 하는 중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삐걱대는 기구의 소음을 삼켜버린 안개. 그 안개가 또 하나의 선물을 했다. 고개든 하늘가에 한쌍의 백로가 반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영상은 나의 심장에 콕 하고 소리를 내었다. 아, 정지된 숨. 그 순간이 두뇌의 기억창고에 저장되었다. 외로이 한 마리였다면 슬펐을 텐데 한 쌍이었다. 안개낀 창공을 멋지게 날으며 그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내가 느끼는 것처럼 운치를 떨림을 느꼈을까. 색다름에 지쳐있었을까. 태양이여 솟아라 노래했을까...이런저런 생각에 주변에 있는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찰라에.

 

  오늘 같은 새벽은 더 자도 좋을 아침이었다. 그래도 일어나 나간 것이 나와 한 쌍의 백로가 이미 만남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생은 이미 기록되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미 예정되어 있는 만남이 곧 인연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래알 같은 인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니...내 생이 이어지는 동안 얼마나 더 많은 인연을 지을까. 인연을 짓는 것은 곧 업(業)을 짓는 일 아닌가...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업만을 간직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게 꽃길만 있던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던가. 알 수 없는 미로를 헤집고 가는 것이 인생이기에 인연의 고리도 내 마음대로 연결할 수 없음을 아는 터.

   

  백로와 맺은 찰라의 인연이든 돌고 돌며 맺은 몇 겁의 인연이든 모두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귀하고 귀하도다 생(生)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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