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며/무채색 그림

12월 중순, 가을 같은 날

나비 오디세이 2006. 12. 21. 03:06

깊은 잠을 자서 일찍 눈이 떠진 것일까?

아니면 꿈 때문일까?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 일어나야 할 시간인 것마냥 정신이 말똥말똥, 몸도 개운했다.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10분. 놀랐다. 30분 정도 침대에서 뒤척인 것을 생각하면...

이불 속에서 방금 전 꿈을 생각한다. 선명하게 들어오는 영상들. 젊었을 때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사촌들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왜일까? 난 그들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그들의 젊었을 적 영상들이 내 꿈에 그대로 보여진 것일까? 이부자리에서 생각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작은아버지가 외출을 하시려다 내게 신발을 내미신다. 그리고 신발 앞부분에 우표크기만한 직사각형의 헝겊같은 부분이 있고 거기에 작은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나더러 쓰라고 했다. 난 이름을 썼는데...작은아버지 성함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 성함을 썼다. 그 기억이 선명하다. 작은 아버지의 각진 얼굴과 움푹 패인 눈, 깐깐한 이미지의 젊은 모습과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꿈속에서지만 그 영상들이 선명하다. 그리고 학교 강의실, 사촌들과 함께 강의실에서 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다. 꿈은 이리저리 나를 데리고 다니다 새벽에 나를 깨웠다. 그리고 내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이 생각 저 생각 골몰하게 했다.

 

일찍 일어난 덕에 어제의 일을 적는다.

 

어제는 내변산 일주도로를 지나 변산해수욕장을 지나 부안댐에 다녀왔다. 날씨는 좋아서 어느 가을 날의 여행처럼 느껴졌다. 바다는 잔잔한 물결, 잔잔한 물살을 남기고 지나갔다. 어린 아기의 부드러운 피부를 연상하게 하는 그 잔잔한 물결은 내 가슴을 벅차게 한다. 언제나 같음. 또 언제나 다름. 양면성을 띠며 바다는 내 마음 속 기억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거대한 물결이 일때나 잔잔한 호수같은 모습으로 아기의 피부를 만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때나........ 언제나 바다는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그러면서 말한다. 비우라고. 마음도 몸도 모두 비우라고. 비울 줄 아는 자가 채울 수 있다고 소리없는 외침을 던진다.

 

새만금 방조제. 그곳 중간에 내려 바다 한가운데에 앉았다. 바위조각들에 붙은 석화. 하얀 포말처럼 보인다. 그곳에 앉아 조용히 잔잔한 물살을 느낀다. 조용한 가운데 돌고래의 울음소리처럼 들리는 소리가 내 귀를 쫑긋하게 했다. 아, 정말 돌고래의 소리다. 바다 한가운데 어디선가 서로에게 서로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기가 엄마를 애타게 찾는 것은 아닐까.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테지......

 

부안댐 가는 길. 바지락죽을 먹고 그 앞에 펼쳐진 갈대밭에 눈을 보낸다. 귀를 기울여 '혹시 개개비가 있을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갈대밭에 집중한다. 아, 개개비의 천국이로구나! 줄포만 생태공원에서는 개개비를 볼 수 없었다. 내년쯤이면 보일까. 그런데 이 곳,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개개비의 "개개 개개"하는 울음소리를 듣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숫자가 오밀조밀한 갈대숲에 몸을 날리고 있다. 그 작은 숲에 그 작은 틈새를 어찌 저리도 잘 날 수 있을까. 작은 새가 작은 소리로 작은 몸짓으로 날고 있다. 내 마음에 '개개 개개'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개개비는 휘파람새과에 속하는 새로 날개 길이가 7.5~9cm, 꽁지 길이는 6~8cm정도로 작은 새다. 강변 또는 습지의 갈대 숲에 산다. 등은 담갈색이고 배부분은 회백색이다. 날개와 꽁지는 갈색 꽁지 끝은 또 회백색이다. 눈썹선은 뚜렷하지 않은 흰 빛을 띤다. 번식기인 초여름에 갈대밭에서 '개개개'하고 시끄럽게 우는 새다. 그런데 어제 12월 중순의 갈대밭에서 개개비가 일제히 '개개개'하고 우는 소리를 듣고 난 초여름인가 착각했다.

 

난 새들을 좋아한다. 특히 개개비를 좋아한다. 연유가 있다. 나의 사유와 사색의 방법에 경종을 울리게 했고 착각 속에서 헤어나오게 한 계기가 된 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빛깔이며 생김이 나의 마음을 붙들었다. 개개비인줄 모르고 좋아한 때부터 알고 좋아한 때까지 그리고 나를 일깨운 새의 이미지로서 나에겐 특별한 새이다. 그래서 더 그 우는 소리와 그 모습에 더 정이 가는지도 모른다. 특히 개개비는 두려움을 많이 타는 새로 결코 몸을 밖으로 내놓지 않는 성격이다. 촘촘한 갈대숲 사이를 오가며 먹이를 먹고 새끼들을 키우는 새다. 그 모습을 관찰하기란 쉽지 않은데 난 어제 복을 누렸다.

 

집앞에 도로가에 조그만 갈대숲이 있다.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는데 어제는 돌아오는 길에 다시 갈대숲에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집중했다. 보인다. 그곳에서도 갈대와 같은 색을 띠며 '개개개'하며 작은 개개비들이 이리저리 노닐고 먹이를 먹고 있다. 아, 누군가를 보려거든 개개비를 보듯 해야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개개비를 보듯 해야 보일 것이다. 개개비는 내마음 속 화수분 같은 역할을 한다. 또 계영배같은 역할을 한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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