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며/무채색 그림

가을 여행

나비 오디세이 2006. 10. 12. 15:32

어제의 흐린 하늘이 어디로 가고 오늘은 하늘이 높고 파랗게 물들었다. 며칠 동안 구름이 가을 하늘을 숨겨 놓았다가 오늘 한꺼번에 파란색을 뿌려 놓은 것 같다. 파랑이 가슴으로 들어 온다.

 

  어제 버스를 타고 바닷가에 다녀왔다. 버스에는 사람이 없다. 도로엔 여행사 차량들이 줄을 이어 달린다. 간간히 비치는 자가용들도 보인다. 버스에는 사람이 없다. 몇 명인가. 서너 명. 목적지에 도착하여 걷는다. 기분이 좋다. 걷는 것은 몸에 이롭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걷는 명상을 한다. 한없이 걷고 또 걷는다. 도로가에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춤을 춘다. 가녀린 몸매에 예쁜 꽃을 간직하고서 흔들거릴 때마다 내 가슴엔 꽃방망이가 후려치는 기분이다. 차들이 쌩쌩 달린다. 논두렁 사이로 갈대밭이 보인다. 갈꽃이 피었다. 억새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갈꽃. 은은한 빛으로 빛나는 억새보다 더 정겹다. 갈꽃에는 그리움을 동반한 무엇이 스며있다. 바람이 분다. 갈대잎이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바람결에 갈대밭이 모두 함께 이쪽 저쪽으로. 그 소리에 잠시 숨을 죽인다. 행복하다.

  바다에 도착했다. 썰물. 넓은 모래사장엔 갈매기떼 한가로이 입질하고 햇살목욕을 한다. 물살이 만들어놓은 작은 모래언덕에는 나뭇잎이 구른다. 모래사장 위로 굴러 다니는 나뭇잎은 산 속 나뭇잎과 다르다. 소금물을 먹은 나뭇잎은 바삭이지 않고 그대로 누워있다. 만져보니 빳빳한 게 힘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 소금을 많이 먹어야 할까보다.

  모래사장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걷는다. 바다는 조용하게 파도소리를 보내온다. 먼 먼 이의 꿈. 혼자이지만 결코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바다. 바위에 앉아 잠시 쉬면서 수평선을 바라본다. 배 한척이 지나간다. 저 배에는 무슨 꿈을 실어 나르고 있는가.

 

  오늘. 갈꽃을 또 봤다. 바다를 또 봤다. 금구원 조각공원으로 가는 길에 약간의 갈대밭이 있다. 그 곁에 저수지엔 철새들이 많다. 연잎이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다. 다가가니 놀란 개구리들이 물 속으로 뛰어든다. 귀엽다. 쇠오리, 쇠백로, 그리고 이름 모를 철새들이 한꺼번에 비상하는 모습은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갈꽃과 억새꽃이 어우러져 춤을 추고 들녘에 노랗고 누렇게 익은 벼들이 정겹다. 산자락은 서서히 붉은 기운을 내뿜는다. 환희언니는 여기저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갈꽃을 꺾어 본다. 낫으로 잘랐을까. 갈대를 잘라낸 자리에 구멍이 숭숭. 빈 몸으로 그렇게 가득함을 아는 지혜로운 갈대.

 

  시골마을에는 감나무, 대추나무, 무화과나무, 등 풍성한 계절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추를 따서 먹었다. 달다. 빈 집에 단감나무가 축 늘어져 있다. 무서운 마음 누르고 빈 집에 들어가서 손이 닿는 곳의 단감을 땄다. 달다. 휴~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 언니도 그렇단다. 둘이라서 가능한 일이었겠지.

  맨드라미, 채송화, 방울 토마토, 그리고 담장 횃대에 걸려 있는 마늘 꾸러미. 시골의 정취를 한껏 느낀다. 길가에는 나락이 누워 햇살에 몸을 맡기고 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덥지만 가을이다. 바람은 가을 바람이다.

  여기저기 눈을 둘 곳이 많다. 행복한 미소를 주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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