瑛芸

바라볼수록 빠져드는 너

나비 오디세이 2006. 12. 28. 15:31

어젯밤, 소파에 잠든 네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단다.

평온, 평화, 온화,,,잠든 너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씻어준다.

 

바라보고 있으면 네 세상에 물들어버린다. 때론 생각한다. 네 세상에 물든 내가 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말았으면 하고 말이다. 네 세상과 내 세상은 참 다르다. 그래서 그 다름으로 인해 더 끌리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다름에서 끌리는 것은 또 다르다. 너는 너 만의 색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색이 점점 나의 색으로 채색되어질까 두렵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하다. 너는 너대로 세상 빛을 간직하고 좋은 것만 간직하길 바라는 나의 심정.

 

욕심이겠지. 그러나, 그러나말이다. 그 욕심마저도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니?

 

오늘은 눈이 많이 내린다. 세상은 온통 하얗다. 너의 색과 같다. 하얀 색은 모든 것을 담아 낼 수 있을까. 오히려 하얀색이라서 모든 색을 담아 낼 수 없다고 한다. 검정색은 모든 색을 담아 낼 수 있다. 외려. 왜냐하면 검정색은 모든 색을 포함하고 있는 색이니까. 그런데 하얀색이 없다면 검정색이 존재할 수 있겠니. 그렇지 않으므로 하얀색과 검정색은 같이 걸어가야 하는 것이지.

 

눈이 내리는 공원에 올랐다. 눈꽃 세상이 펼쳐져 있다. 키 낮은 관목숲 사이로 눈발이 세게 지나간다. 웃자란 교목들은 흔~들 흔~들 숲머리를 바람에 맡기고 천천히 천천히 움직인다. 나목이 되어 몸에 눈꽃을 이고 있는 나무들도 늘푸른 나무들도 눈꽃을 아름다이 만들어 내었다. 다소곳이 내리는 눈은 소담스런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산에는 꽃이 피었다. 눈꽃이. 그 풍경은 내 마음에 들어와 앉았다. 사랑하는 아이처럼.

 

머리속엔 이런 저런 생각들이 춤을 춘다. '내일은 아이와 함께 와야지. 이 길은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면 좋겠다. (마음이 통하는 언니와 걷는 것도 물론 좋지만 말이다.) 혼자서 조용히 걸어도 좋겠다. ......'

 

내려오는 길.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눈사태. 나무들에 앉아 있던 눈들이 일시에 바람에 날려 앞을 가린다. 일순 무섬증이 일지만 그 풍경은 놓치기 싫다. 그 속으로, 눈 속으로 빠진다. 아, 이러한 경험이 뇌에 새로운 새포를 형성해주는 느낌이다. 새로운 체험, 새로운 행동은 생동감으로 이어지고 머리엔 세포들이 마구마구 춤을 추는 듯하다. 그래서 새로운 풍경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자연그대로.

 

눈으로 인해 정체되고 지저분해지고 사고가 나고 한다해도 눈은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오묘한 힘을 간직하고 있기에 누구나 사랑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갓난 아기의 미소와 같다. 잠든 나의 아들 모습과 같다.

잠든 아이의 볼에 살며시 뽀뽀를 한다. 눈꽃이 핀 나뭇가지를 살짝 건드려 본다. 아이가 살짝 뒤척인다. 눈꽃이 사르르 녹아 든다. 상응하는 기쁨, 상통하는 기쁨이다.

 

혜원사 앞뜰에 눈이 쌓였다. 뒤안 장독대에도 눈이 쌓였다. 극락전(極樂展). 여기가 바로 극락인가, 한다. 홀로 또 같이.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따로 또 같이 이기 때문이겠지.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인생은 오르막 길만 있는 것도 아니요, 내리막 길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 인생길은 닦여서 나의 길, 너의 길, 정해지고 각자의 길을 자신의 발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너나없이 소중한 것.

 

나의 마음 가득 사랑을 심어 놓은 너는 언제나 나의 길 위에 있다. 네 눈(眼)속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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