瑛芸

너의 크기

나비 오디세이 2006. 11. 8. 06:06

시시때때로 네가 자랐음을 인식한다. 느낀다. 감동한다. 그런데 가장 크게 네가 '컸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바로 계절이 바뀌어 네 옷을 살 때다.

 

여름날 같았던 가을 날이 지나고,

입동인 어제는 임실, 진안에는 첫눈이 내렸다.

뉴스에서 본 제주도 한라산의 상고대는 장관이었다.

그곳에서 생일을 맞이해 행복하다는 한 여인의 인터뷰가 머리에서 맴맴돈다.

 

춥다는 것은 몸이 먼저 느끼는가, 마음이 먼저 느끼는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몸이 먼저 겨울이 왔음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마음이 먼저 느낀다. 몸으로 느끼는 이는 감성보다는 생리적 현상에 더 가까운 사고를 하고

마음이 먼저 느끼는 이는 감성적 코드가 육신을 지배하는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제 아침,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겨울 옷을 꺼냈다. 퀴퀴한 냄새가 난다. 장롱 속에는 내 묵은

'생각덩어리'가 옷들과 함께 자고 있었던 것 같다. 옷들을 꺼내는 순간 생각은 과거로 달리고 달리는 생각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커버린 아이와 작아진 옷들 사이에서 멍! 해진다.

 

아이도 몸만 커진 것은 아니다. 생각도 몸도 점점 커지는 아이. 그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의 나이가 떠오르고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동시상영 된다. 동시상영이라는 영화는 그래도

차례가 있지만 나의 생각은 그야말로 과거, 현재, 미래가 뒤죽박죽이 된 상태다.

얼키설키 얽힌 실타래 같은 생각이지만 그 생각을 정리 할 수 있는 사람도 나요,

그 생각을 흩트러 버릴 사람도 나라는 것을 안다.

 

생각의 주체는 언제나 나다. 또한 행동의 주체도 나다. 다른 그 누구도 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김용옥선생님(시인, 수필가)-도올 김용옥 선생님과는 다름-은

언제나 전체를 나타내는, 숫자 1에 비유한다. 가장 큰 수이며  전체가 되는 수는 언제나

1이라는 것이다. 세상 만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수. 그 큰 수가 바로 1이며 바로 나다.

그 나가 바로 정립되면 가정이, 학교가, 사회가, 단체가, 국가가,

그리고 나아가 세계가 바로 선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나를 세우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금언이라 생각한다.

 

가까운 이랑 쇼핑을 하러 갔다. 고르고 또 고르고...아이의 몸에 맞고 생각에 맞는 옷을 고르느라

분주한 손길은 행복했다. 대체로 주부들이 싸고 좋은 품질의 상품을 고르고 나면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을 받는다. 어제 내가 그랬다.

 

아이가 변신을 하고 나온다며 방안으로 들어가 거실로 뛰어 나온다.

딱 맞는 옷을 입고 슈퍼맨이 되는 아이가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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