痛通統/서랍

만남

나비 오디세이 2006. 12. 31. 07:01

만남,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만남이 다 소중하고 귀하지만 특히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만남이 있다.

 

29일 아침 10시. 아이와 함께 부산을 떨며 터미널에 갔다. 어제 내린 눈이 쌓여 있고 맹추위다. 장갑, 목도리, 모자, 마스크로 중무장을 했다. 종종걸음치며 어느새 터미널. 반가운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전주로 출발.

 

서서학동에 예그린. 그녀의 집이 있는 곳. 그녀만의 향기를 궁금해하며 늘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선생님과 제자로 만난 우리들. 그녀는 말한다. 이젠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라고. 어려운 관계를 벗어나라고. 그녀의 세계는 확 트인 태평양같다.

 

그녀와 그녀의 딸이 거주하는 작은 아파트에 들어섰다. 아, 그녀의 삶의 흔적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감격. 그녀의 글들에서 나타나는 그대로 고스란히 그곳에 풍경화를 이루고 있다. 작은 베란다에는 150여종이 넘는 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겨울을 감내하고 있었다. 낙엽이 진 베란다. 겨울이지만 꽃봉우리를 내밀고 있는 야생화들. 그 이름을 다 알고 있고 그 쓰임을 다 알고 있는 그녀. 그들과 생활한지 20년이라 한다. 자라서 시집보낸 친구들도 있고...... 베란다 콘크리트 벽에는 제비집이 있다. 그녀의 글, 말에서 나타난 제비집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우리는 모두 감탄사를 내지른다.

 

그녀는 부지런히 차를 준비한다. 송구하다. 투명한 유리잔에 그녀가 담아온 차는 매화차. 말린 감잎을 아래에 넣고 이른 봄에 정성껏 따서 건냉한 매화꽃을 동동 띄워 우려낸 감잎매화차는 그야말로 색도 향도 환상이다. 거기에다 차숟가락은 또 어떤가. 오죽을 곱게 다듬어 만든 대나무 차숟가락이다. 운치가 있다. 차를 마시는 탁자는 250년 가량된 나무를 잘라 만든 것이다. 나이테가 말해준다.

 

거실, 선생님방, 딸방, 식탁, 창고 등엔 책들로 가득하다. 철제 책꽂이를 만들어 천정 가장자리를 모두 책장으로 만들고 빈 공간 없이 책으로 가득채웠다.그것으로도 모자라 책들은 여기저기 쌓여 있다. 그것들이 모두 정리가 되어있다. 흐트러지지 않고. 제때 찾 을 수 있도록. 그녀의 집 공간 활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책들의 제목을 훑어 본다.

 

끝없는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름다운 만남에서 오는 꽃 같은 이야기꽃을.

 

종로회관이라는 곳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사람들이 많다. 유명한 곳답게 음식도 맛있고 깔끔하다. 부랴부랴 경기전으로 향한다. 우리는 선생님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경기전 이곳저곳을 답사한다. 어주(수라간), 어정, 어가, 태조 영정, 정조의 태실이 있다. 숙연해진다. 아이는 조용히 우리 일행을 따른다. 세종, 정조, 영조, 고종, 순종, 철종, 등 어진이 나열되어 있다. 세종 어진 앞에서 아이에게 "이분이 한글을 만드신 분이야."라고 말하니 눈이 동그래진다.  세종어제 훈민정음(世宗御題 訓民正音).

 

경기전의 느티나무들이 드라마 '용의 눈물'을 촬영하고 난 후 상처를 많이 입었다. 벗겨진 수피, 잘려진 가지들. 풍성해야할 나무가 가난한 농부의 모습처럼 허허롭다. 중요한 것은 무얼까?

 

안쪽에 아름드리 고목에는 익조인 쇠딱따구리(몸통이 흰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 박새, 직박구리, 까치가 함께 살고 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박새, 쇠딱따구리를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선생님의 설명에 아이는 연신 고개를 갸웃, 끄덕끄덕. 알고 하는 것인지.......그러나 나중에 다 기억 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을 할애한 선생님. 인연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들의 꿈을 스러지지 않게 하려 애쓰는 선생님. 이번 동행이 참 기쁘고 선생님의 일상을, 삶의 형태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녀의 면면이 조금씩 조금씩 내 삶으로 파고 든다.  

'痛通統 > 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잊어 버린 다는 것  (0) 2007.02.01
반지  (0) 2007.01.16
  (0) 2006.10.27
동행  (0) 2006.08.30
네 생각에 잠못들다  (0) 200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