瑛芸

수료증이 상장으로

나비 오디세이 2007. 2. 25. 06:12

2007년 2월 23일. 영운이가 유치원에서 수료증서를 받아왔다.

"엄마, 나 상장 받아 왔어. 어디 있더라. 찾았다."

행복해하며 아이는 나에게 수료증서를 내민다.

"그래, 상장 멋지네. 수고했어."

 

그렇다. 1년을 다닌 아이에게 수료증서는 그 어떤 상장보다 큰 의미가 있는 상장이다.

만6세 이전에 아이들의 인격은 96%가량이 이미 형성된다.

유치원에서 하루중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그곳에서 배우고 체득하고 하는 것들은,

인생의 전과정을 좌지우지하는 밑바탕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훌륭한 수료증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뿌듯해한다.

 

나 어릴적엔 집이, 동네 야산이 유치원이고 학습의 장이었다.

집에서는 언니,오빠,동생들과 놀이를 하고 또 싸우기도 하면서 상호관계를 배웠고,

집밖으로 나가면 자연이 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우리를 반긴다.

지금은 아이들이 현장학습이라는 명칭으로 야외에 나간다.

이곳은 그래도 가까이 자연을 접할 수 있어서 시간나면 다녀올 수 있는 혜택이 있다.

그러나 대도시의 아이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자연의 소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뿐만 아니라 새소리, 물흐르는 소리, 맑은 공기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락게임을 하거나 채팅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점점 더 그러는 것 같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정서가 어떨까? 커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가끔은 심히 걱정이 된다.

 

어제 오전에 석동산(집앞에 있는 산)에 올라 봄이 오는 소리를 들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꿈틀꿈틀한다. 봄이라고 몸으로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는 메아리 되어 내 심장에 그녀의 심장에 박히는 듯하다.

 

봄나물의 대명사 냉이를 발견하고 산비탈에 있는 밭으로 들어간다. 하나 둘 캐내다 보니 제법 많다.

준비없이 나와서 길가 나무로 흙을 파고 맨손으로 냉이를 캔다.

흙내음과 냉이의 향이 어우러져 봄향기 물씬 풍겨나온다.

'솔바람 소리'의 책이 나오면서 여러 가지로 실수가 많았다.

그로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음부터는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환희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끝에 냉이를 캐서 오게 된 것이다. 뜻하지 않은 냉이로 인해 마음엔 봄처럼 환한 빛이 들인다. 더불어 몸도 신나 한다.

 

오후엔 영운이랑 데이트를 했다. 개암사에 가자는 아이의 재촉에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출발.

늘 가는 길이지만 운전을 안 하다 하게되니 신경이 곤두선다. 그것도 잠시, 금새 익숙해진 몸과 마음은

나들이 기분을 차에 실었다. 행복한 기분을 함께 싣고 달리는 차는 더 쌩쌩달린다.

 

우리집에 이르게 나온 수선화 한 송이 마냥, 이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바람은 쌔하니 차갑지만 산에 오르는 아이는 발걸음이 힘차다. 이제는 제가 알아서 앞장서고 개암사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전나무의 행렬을 지나 300백 년 된 느티나무 앞에서 "나 이 나무 알아."하면서 나에게 알려준다.

 

대웅보전앞에 서서 안내판을 읽는 나에게 전에 읽었잖아 하며 핀잔도 주고 건물 벽에 그려져 있는 탱화를 보고 '어쩌구 저쩌구' 설명도 하는 아이의 입이 예쁘기만하다.

 

몇 개월 차이로 아이는 많이 자랐다. 같이 다니면 든든하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는 아이.

미세한 차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몸과 마음. 보면 볼수록 더 잘 보이는 아이의 크기.

예민하고 눈에선 광채가 나는 아이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봄의 나무들이 담록색의 연하디 연한 잎을 소리없이 밀어 내듯이 아이는 나무처럼 소리없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세상에 알린다. 무한한 아이의 가능성. 보배로운 존재. 아이를 보면 무지개를 보는 것처럼 마음이 뛴다. 무지개는 곧 아이의 모습이다.

 

아이가 가져온 수료증 한 장이 인생의 커다란 상장으로 변할 것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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