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굴

남동생 내외가 다녀가다

나비 오디세이 2007. 3. 18. 21:46

무슨 꽃일까?

분홍색 꽃 여러 송이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찻잔과 찻잔 받침에, 분홍색 네모난 초를 켰다.

화사하게 핀 꽃들 앞에서 불꽃이 하르르 춤을 추고 있다.  

 

어머니는 하르르한 치마를 입은 적이 없다.

무명치마에 무명저고리를 입었었고, 몸빼바지에 수수한 면티를 입었었다. 어머니가 가장 화려하게 변신하는 때는 자식들의 결혼식날.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어머니는 항상 꽃보다 아름다웠다. 고상하고 고아한 풍취를 풍기는 어머니는 천상 여자였다. 긴 목선과 둥글고 아담한 어깨를 가진 어머니는 그 시대 여느 어머니들보다 키가 큰 편이었다. 그래서 한복을 입거나 양장을 하거나 옷맵시가 뛰어났다. 같은 옷을 입어도 다르게 보이는 몸매였다.

 

중등시절, 어느 날인가, 어머니가 옷장에서 옷을 고르다가 -사실 고르고 뭐할 옷도 별로 없었다- 초록색 셔츠를 고르시는 것을 보고

"엄마, 엄마는 무슨 색이 가장 좋아?"

"응, 초록색."

 

10년전, 폭염에 지열이 후끈 달아오른 날, 어머니는 암병동에 입원했고 아프고 아픈 시간들이 흘러갔다. 나의 시간과 우리 가족들의 시간은 멈춰 있었는데 세상의 시간은 멈추지도 않았고 물처럼 계속 흐르고 흘러갔다. 멈출줄을 모르고.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하관할 때, 남동생은 무덤 속에 들어가 울부짖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말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내고 돌아왔다.

보낸다고? 그게 보내지던가. 보내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함께 하지 않을 뿐이며, 가슴엔 더욱더 가득한 사랑을 담고 있는 것이며, 더욱더 애절하여 애통해 하는 것을.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무수한 시간들이 흘러 갔다. 그리고 남동생은 장가를 갔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 그 조카가 우리집에 와서 방긋방긋 웃는다. 해처럼 맑고 밝은 얼굴을 가진 조카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눈물겹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보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찌 이뿐이겠는가? 행복한 순간이면 더 생각나는 것을. 돌아서면 아쉬운 것이 인생사.

 

삶, 사랑, 자유, 사람, 자연, 명예, 권력, 부,,,,, 촛불앞에서 무녀처럼 춤을 추어보는 마음.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수레바퀴아래서. 흐르는 시간앞에서. 아침이슬처럼 영롱한 조카의 눈동자가

나를 비추는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일순 현기증이 났다.

 

어머니가 사준 분홍색 찻잔에 촛불이 말없이 녹아 내리고 있다. 어머니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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