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굴

어느새 10년

나비 오디세이 2007. 5. 25. 19:36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흘렀군요.

생생하게 살아서 내 몸 속을 휘젓고 다니는 당신의 피를

느끼는데 어느새 10년이 흘렀군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당신의 모습은 계절의 특색을 담고 오시지요.

그뿐 아니라 언제 어느 곳에서나 시시각각

다른 모습 다른 형태로 오시지요.

 

그런 당신에게 어제는 죄송하였답니다.

제가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인데 왜 그때 참지 못했을까요.

제가 어리석어서 그랬겠지요. 그런 제 자신이 미워서 또 화가나더군요.

그래서 정리를 했습니다. 앞으로 절대 그러지 말자고.

모든 것은 내가 나를 다스리지 못해서 일어나는 불상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운전을 좀 못하면 어떻고, 말을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그 모든 것은 내 기준에 맞춘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언니도 그렇게 충고를 했지요.

 

모든 것은 '내 사람이니까 더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불만이 생기고

그 불만이 화가 되는 것을 알겠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바라봐 주자고

해놓고도 그것은 머리에서만 가능했던가봅니다. 가슴으로는 이해를 하지 못했던가 봅니다.

그것은 꼭 남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랬던 것을 깨닫습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관대해지고

내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내 자신에게 관대하고 불의에 타협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나'이외의 사람에게는 관대해지고

'나'에게는 철저히 비판적이 되어서 나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기가 어디 쉽겠습니까마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당신은 늘 저의 그림자를 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날의 저의 과오를 다 보았으며 앞으로도 저의 하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눈을 피해가려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눈을 바라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하렵니다.

 

아버지가 당신 모습을 이야기하실 적에는 눈시울이 적셔집니다.

어제도 그랬지요. 당신 계신 곳에는 엉겅퀴와 괭이밥과 산딸기가 한창이었지요.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계실 당신을 떠올리면서 그나마 위안을 삼았지요.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이 바람결에 황금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은영이는 그 모습을 신기하다고 하면서 당신의 손녀되는 애리, 채리에게

가서 보리를 만져보고 오라고 했지요. 덩달아 영운이도 보리를 한 뿌리 뽑아 왔더군요.

 

당신을 만나는 자리에서 오손도손 이야기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이제 당신은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신은 그대로 우리 안에 존재하면서 오히려 우리 가족의 결속력을 다져주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오빠가 그렇게 커다란 사람이 되었음을 알겠습니다.

오빠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우리가족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요. 당신, 오빠를 늘 걱정하고 계시더니

결국 오빠의 마음을 잡아주셨음을 알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 영(靈)의 힘을 느낍니다. 10년의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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