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며/구름

안개비 내리는 아침

나비 오디세이 2007. 6. 30. 07:42

새벽에 잠깐 꿈을 꾸었다. 그런데 무서운 괴물이 나왔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는데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티라노사우루스 (너무 과장인 듯하지만 꿈에선 그렇게 느껴졌다.)

만큼 커졌다. 놀라서 깼다. 아주 잠시 였다.

이런 꿈을 꾼것은 어제 책에서 본 내용 때문이었을까.

'찰나와 영원'이라는 소제목 속에 꿈에 대해서 나왔었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이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이라.

우리가 꾸는 꿈이 무량원겁즉일념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니,

수많은 일들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뭇 중생이 꾸는 꿈이로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무량겁을 일념처럼 보내는 이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생각과 시간이 일체가 되는 것.

 

새벽,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몸은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아서 꾼 꿈.

그 꿈이 몸을 찌뿌등하게 했다.

밖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짙은 안개다.

좀 늦었지만 토요일이기에 자전거를 타고 공원으로 나갔다. 바람은 없다.

멈추어 있는 나무들과 짙푸른 녹음의 바다를 가르고 달리는 기분은 좋았다.

안개비가 축축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갈대잎과 잎을 연결해 놓은 거미줄이 보인다.

얼키설키 붙어 있으면서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서로를 부비는 갈대잎.

안개비가 그 형상을 드러내 놓은 거미줄,거미줄,거미줄.

투명한 보석을 온몸에 걸치고 있는 사람처럼 거미줄은 보석을 매달고 있다.

거기에 햇빛이 비추면 어떨까. 상상해보라.

 

어제의 나는 일념이 무량겁인 시간을 보냈다. 집착이 애욕이 나의 몸에 거미줄처럼 엉켜붙었다.

떼어내려하면 더 단단하게 엉켜붙는 아집 덩어리들. 발버둥치는 육신을 영혼인들 어찌할 수

있겠는가. 평범한 일상처럼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내면에서는 태풍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며

부글부글 이글이글 대었다.

 

부처님의 삼매 같은 무량원겁즉일념이라면 성취가 있었을 것이요 튼실한 과실을 얻었으리요만

바보같은 중생은 일념즉시무량겁이었으니 무엇인들 얻었겠는가. 병만 얻었을 뿐.

 

짙은 안개 속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소리만 들렸다.

시나브로 안개가 걷히는 것이 보인다. 인생에 낀 안개도 저렇게 시나브로 사라지겠지.

안개 뒤에서도 구름 뒤에서도 해는 항상 그 자리에서 세상 만물에 고루 비추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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