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며/무채색 그림

신시도에 가다

나비 오디세이 2011. 2. 26. 20:33

 

          하늘 담은 학독.

옛날 어머니들이 쓰던 물건이 이렇게 다른 모습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따스해진다.

쓸모 없어 버려지는 것은 가슴이 아픈 일. 내가 늙어지면 어디에 버려질지 모른다는 생각끝에,

저 학독의 변신이 나의 미래를 다소나마 대변해주는 것 같아 가슴 한 쪽이 더워지는 것일게다.

돌도 나무도 풀도 모두 늙는다. 우리는 모두 시간을 건너 뛰지 못한다.

다만 세월 속에 녹아들어 간다. 스스럼 없이 일신우일신하면서

서로서로 한몸되는 세상. 그렇게 경계를 허무는 삶을 살다가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는 순간을 맞으면 무에 서러울까.

다른 삶, 다른 운명으로 만나 신발이 닳고 닳을 때까지 걷다가 신발 벗는 날이 오면 누구나 같은 걸.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신시도에 갔다. 예보와는 달리 화창해서 산행을 하기엔 좋은 날이었다.

세계 최장이라는('세계 최0'라는 말 너무 좋아하지 말아야지 나라 망칠라)새만금 방조제를 타고 바닷길을 달린다.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바다 위의 길.

부안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겐 슬픔이 더 많은 바다 막음.

갯벌의 생명이 죽어간 만큼 부안의 경제는 죽어간다는 말이 있다.

경젯길이 막혀서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거대한 토목공사는 거대한 사람들의 배만 점점 거대하게 할 뿐,

작고 힘 없는 사람들의 배는 점점 홀쭉해져 가고 있다.

배좀 불려보겠다고 고향을 떠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겠느냐마는

빈익빈부익부의 현상이 어디 어제 오늘일이었느냐마는...

섬 곳곳이 헐리고 나무는 베어져 누워있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말 없고 힘 없는 존재들이 쓰러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지구는 도니 우리도 돌아야지. 오늘도 걷는다. 

 

다 쓰러져 가는 섬 주민의 집 한켠에 학독이 놓여 있다. 

학독 안에서 껍질이 벗겨져 부드러워진 몸을 보시하는 곡식 같은 삶들이 널려 있다.

학독의 변신일까.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이 성긴 이를 드러내며 미소짓는 길 모퉁이,

돌아오는 길, 할머니가 내 발길을 더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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