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글마당

나의 하느님 - 김춘수

나비 오디세이 2016. 9. 27. 21:19

 나의 하느님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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