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나희덕
깎아도 깎아도 가벼워지지 않는 형벌,
제 몸을 깎아내리면서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노릇을 얼마나 계속해온 걸까
동료가 해직당하고 선배가 잡혀가는 중에도
무사히 살아 제자리에 붙어 있는,
잘려나가도 금세 더 길게 자라오르는 손톱처럼
나는 여기에 남아 있구나
매달 월급봉투를 헐어 전교조 후원금을 내고
해직교사 복직을 위한 서명도 하지만
끝내 걸어가지 못한 마지막 한 길 있어
온몸으로 피 흘리며 깊어가지 못하는
이 가슴 속, 참회의 낮은 목소리
깨물고 깨물어도 줄어들지 않네
어느새 손톱 밑으로 때가 스며들고
장마철 풀숲처럼 저도 모르게 무성해지는 가슴,
어떤 낫으로 베어내야 다시 자라지 않을까
<<뿌리에게>>, 창비, 나희덕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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