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굴

그녀에 대한 추억(1)

나비 오디세이 2005. 11. 14. 11:16

그 해 여름날은 무더위가 더 기승을 부렸던 것 같다.

그런 무더위조차 날려 버릴 듯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게

힘있고 항상 웃음을 간직한 채 날아 다니는 새 같았다.

웃음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그녀가 그 해 여름에 휘젓고 다니던 길을 평생 지울 수 없다.

그녀가 그 해 여름에 웃으며 하던 말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기침이 심해졌다. 가래도 많아졌다.

동네 병원에서 큰병원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그것은 어떤 음울한 징후를 나타내는 것임을 우리는 그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생각했다. (속으로야 걱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검사 결과 폐암 말기 였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일말의 전조도 없이 그렇게 슬픔은

우리가족의 틈새로 깊숙이 파고 들었다.

수술을 하고 힘겨운 항암 치료를 그녀는 잘 견뎌 주었다.

원래 그녀는 몸이 튼튼한 편이 아니다. 살집도 없고 깡다구로 버티는 편이다.

이번에도 역시 그녀는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병마와 싸웠다.

눈앞에 있는 남편과 자식들을 생각해서...

 

그녀의 노력이 가족들의 헌신이 좋은 결과를 낳은 듯했다.

그녀는 집에 왔다. 통원치료를 하고 병원에 있을 때보다 좋아진듯 했다.

그녀는 나랑 같이 시장에도 갔다. 옷도 샀다. 화사한 옷으로...

그러고 나서 그녀는 다시 악화 되어 세상을 등지고

자유로운 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녀만의 초록 동굴로...

9년이 흘렀다.

그녀의 초록동굴에 나는 가끔 찾아 간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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