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굴

빈 자리

나비 오디세이 2005. 11. 15. 14:27

그녀의 빈 자리는 항상 내 뒤를 쫓아 다닌다.

내 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아는 모든이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조용히, 언제나, 항상, 그녀는 그렇게 소리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그녀를 알았던 모든 이의 가슴에 은은한 종소리를 내며 그녀만의

소리를 간직한채 그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녀가 탐스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기도 하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땋아 올리고

젊음을 과시하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옛날 사진사 앞에 서 있는 모습은

수줍은 처녀 그대로이다. 잔주름 하나 없이 짙은 눈썹, 반달 모양의 눈동자와

오똑한 콧날, 얇지도 않고 너무 두껍지도 않고 적당히 도톰한 입술은

연분홍 빛을 내고 있다. 얼굴형은 계란형이다. 그녀는 미인이었다.

 

배움은 짧았으나 삶에 지혜는 그녀 몸에 베어 있었다. 그녀만의 색을 늘 간직한채

고고한 학처럼 그렇게 삶을 채워 나갔다. 결코 흠 잡을 데 없는 희디 흰 학처럼...

 

그녀의 세계는 좁고도 넓은 대양을 연상하게 한다.

그녀의 공간은 늘 가족들 틈에 있었지만

그녀의 사랑은 태평양을 다 담아내어도 부족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녀의 사랑을 공유한 모든 이의 독백이고 부정할 수 없는 증언이다.

 

그녀의 상징은 인내와 끈기와 넘치는 사랑이다.

그녀가 좋아한 색은 초록이다.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녀가 없음을 요즘에 또 느낀다.

그녀의 빈자리를 다른이가 채우고 있긴 하지만

그녀도 받아 들였다고 믿는다. 그 언젠가부터는...

 

그녀의 자리엔 그 누구도 채울 수 없는 그녀만의 자리가 있다.

결코 지울 수도 없고 채울 수도 없는.

 

온전한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을 다른이에게 미안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수용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인생이고 다른 그녀 또한 그녀가 선택한 것임을...

 

집안 대소사에서 그녀의 빈 자리가 크게 와 닿는다.

파안대소하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넘쳐나야 할 자리에

그녀의 향기만 폴폴 날리고 있다.

쓸쓸한 가을 날에 뒹구는 낙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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