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동굴

또 다른 나의 아버지를 보는 듯한 시선

나비 오디세이 2005. 11. 20. 06:58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터널에서 각자의 갈길을 무심한 듯 가고 있다.

자신들의 주어진 틀 안에서 소소한 일들이 그 위치를 차지하며

시간은 세월은 시공을 초월해서 흘러 흘러 간다.

 

바퀴가 굴러 가다가 삐그덕 제동이 걸리는 때는 언제인가.

가장 큰 삐그덕 거림은 병(病)이 들거나 사고가 났을 때가 아닐까.

 

갑작스런 전화가 왔다.

시외삼촌. 79세. 병마와 싸우다 어제 아침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가니 그곳에는 또 아내가 폐암으로 투병중인 시이모의 남편분도 오셨다.

우리 어머니에게 보면 오빠는 돌아가시고

동생은 폐암인 거다. 참 슬픈일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일까. 담담하고 갈 때를 채비하는 모습은

외려 당연하게 보인다. 삶이란 이런 것인가보다. 갈때가 되면 자연스레 가는 것.

자기 자리를 찾아 가는 것도 중요하다며 화장을 할 것을 당부한다.

난 아무소리도 못한다. 그 부분에서는 나와 같은 생각이신 시어머님.

 

시이모부는 한달새 10년은 더 늙어 버리신 듯했다.

10여년전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다.

거의 비슷한 연세이다. 아내의 병은 남편을 그렇게 10년을

더 늙게 만드는가 보다.

 

죽음이 목전에 오면 오히려 더 살고자 하는 의지는 강렬해짐을 안다.

그것은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자신을 위해서 그러기도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을 위한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의욕을 보여야만 남아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그나마 병수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사자에게도

그런 의지가 생겨야만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음을 안다.

그것이 병과의 싸움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형태라 여겨진다.

 

형제자매가 나올때는 순서대로 나오지만

갈때는 그 순서가 뒤바뀌듯 인생사 누구나 그렇게 나온 순서대로 가지는 않음을

모여있는 자리에서 다시한번 실감한다.

 

어머니 사후, 친정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자식들에게 의탁하기 싫어하시면서

자신이 몸소 남은 인생을 책임질 반려자를 찾으셨다.

그것이 자식들에게는 배신처럼 느껴지고 눈물을 흘리게 했지만

감정을 떠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재산도 없고 자식에게 의탁하기 싫으신 아버지의 처지를 한번 더 헤아렸더라면

그때당시 바로 이해되었을 처사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살아실제 한쌍의 원앙처럼 사신분임을 자타가 공인한다.

병원에서도 그랬다. 모두가 아버지를 일러

"저런 남편이 어디있누?"그러셨다.

그래서 아버지를 더욱 걱정했다. 걱정한바와 달리 아버지가 취하신 행동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지 못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있었다.

걱정은 걱정이고 사랑은 사랑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그러나 망자는 외려 아버지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찾으셨다.

자식들은 이제 아버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변형된 모습은 얼마든지 수용가능함을

몸소 체득한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바라본 시이모부님의 모습은 내게 남다른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분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재에 삶에 충실하기만을 기도했다.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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