痛通統/독백

거미줄에 갇히다

나비 오디세이 2006. 6. 1. 15:59

안개비가 소리 없이 내리더니 옷을 적시었다.

새벽공기는 무겁고 눅진하니 신발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키 작은 물푸레나무에는 작고 아담한 하얀 꽃이 이쁘게 피었다.

이파리도 파릇파릇 작은 하트를 닮았다. 그 나무에 걸린 거미줄이 나의 시선을 당겼다.

맑은 날에는 나타나지 않아 모른 그 거미줄들.

그 집들이 무수히 많다. 작은 물방울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이른 아침 그 안에는 아무도 잠을 자지 않는다. 다 어디로 갔을까.

빈 집이다.

거미들도 신새벽에 일을 나가는걸까.

 

빈 집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느끼는 것은

내가 빈 집에 홀로 들어가 누워 있는 형상이다.

거미줄에 갇혀서.

 

왜 거미줄이 편안하게 보일까.

차라리 그곳에 안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뒤로 하고 

공원을 돌았다. 그래도 시선은 자꾸만 거미줄에 걸린다.

 

어느 집에는 손님이 찾아 왔다. 그리고 또 어느 집에는 거미 혼자서 잠을 자고 있는 집도 있다.

그러니까 모두가 빈 집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 눈에 비친 것만이 빈 집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찾은 곳은 빈 집이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 온다는 것이다.

여러 명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도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가장 먼저 들어 오는 현상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처럼.

 

공원 둘레를 아름답게 치장해주는 물푸레나무가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음을

새삼 느끼며 모든 사물은 그 자리에서 그 자리를 지킬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것을 또 한번 실감한다.

 

거미줄에 갇힌 것이 나인지

거미줄이 나에게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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