痛通統/독백

측백나무 사이로

나비 오디세이 2006. 7. 12. 11:06

이른 새벽의 바람이 머리를 날리는 기분은 상쾌하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태풍에도 장맛비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의연하게 서 있는

측백나무들로 눈이 시원하다. 나무들의 머리는 연한 초록색으로 아이들의 우윳빛 피부를

연상하게 한다. 만지면 그 부드러움에 흠뻑 빠져 들어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그 측백나무 사이로 그 할아버지는 여전히 "야~호~"하신다. 오늘도.

그 할아버지는 빨간 티에 하얀 바지를 즐겨 입으시며 중간의 지팡이를 들고 오신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시간에 공원에 가신다. 몸은 좀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청춘인 거다.

 

내가 한달 가량을 아침운동을 하지 못하고 오늘 나가본 그 하늘에 할아버지가 반겨주었다.

그 변함없는 야호소리도...할아버지는 팔순을 넘긴 것 같다. 작은 체구에 깡마른 몸이다.

오십킬로그램을 넘을까...생각해본다. 그 할아버지는 나에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아버지도 좀더 있으면 저렇게 변하실 거다. 나도 세월따라 그렇게 변할 거다.

 

대지에, 도로에 흠뻑 적신 빗물을 머금고 촉촉한 하루를 여는 세상이다.

여기저기에 지렁이가 꿈틀거린다.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행여 다칠까봐.

달팽이는 어디로 간것일까?

 

돌아오는 길에 지렁이 한마리가 현란한 몸짓을 한다. 왜?

순간 놀라 내 시선은 고정되었다. 잠시후 진정된 듯하다.

아마도 개미에 물렸거나,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 같다.

용의 몸부림이 저럴까. 아니 희열에 들떠 흔드는 여성의 몸짓이 저럴까...

조용조용 미끄러져 가는 지렁이만 보다가 놀라 뒤흔드는 한 마리의 지렁이를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 생각에 변화를 일으키며 발상의 전환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지. 꿈틀 정도가 아니다. 온몸으로 우는 것이다.

함부로 밟지 말라. 지렁이도. 전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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