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생각뿌리

오이 맛사지

나비 오디세이 2006. 8. 17. 21:42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무엇을 하면 좋을까.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단체로 오이 맛사지를 했다. 오이의 상큼함과 온가족이

누워서 소파에 발을 올리고 얼굴엔 오이향을 얹어 놓고 웃음꽃을 피웠다.

순간, 더위도 물러가고 환한 웃음이 가득한 시간이 되었다.

오이의 싱싱함과 상큼한 향도 향이지만 가족간의 그러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간이었다. 누구보다 아이가 가장 즐거워하며

엄마 얼굴에 아빠 얼굴에 오이를 붙이고 떼어내고 난리다. 다리에도 팔에도 여기저기

오이는 굴러다닌다. 그 오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사랑을 가득 담고서.

 

"엄마, 얼굴 위에 오이 먹어도 돼?"

"응, 근데 엄마 얼굴에 있는 땀이 오이에 묻었을텐데...어떻하지?"

"......"(고민중인 아들얼굴...&&^^)

 

아주 작은 일에서 행복이 가득하다. 삶은 순간 순간 조율하는 조율사가 되어야 함을 느낀다.

그 순간 순간의 엔돌핀이 삶 전체로 전이되어 조화로운 삶이 되어간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삼키는게 

아니라, 작은 것이 큰 것을 하나하나 잠식해 가는 것 아닐까. 작은 물방울이 모이고 모여서

큰 바위를 뚫는 것처럼.

 

어릴 때 오이밭에 간적이 있다. 길고 가느다란 오이가 여린 한 여인을 연상하게 했다.

난 오이 같은 여자가 좋았다. 늘씬하고 표면은 부드럽기보다 까슬까슬한 그 오이가

한 입 베어 물면 세상 어떤 싱싱함과 상큼함이 나보다 나을소냐? 하면서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과 같은 아삭 달콤함에 오이 같은 상큼 발랄한 사람말이다.

 

그런데 매미가 7년을 어둠속에서 굼벵이 상태로 지내는 것처럼 나의 상큼함은 그렇게

어둠에 잠들어 있었다고나 할까. 하늘을 원망하고 세상이 원망스러워 울기를 얼마던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고 모두가 부질없는 일들이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것처럼 절망과 고뇌속으로 몰아 넣는 것은

인생이 가진 굴레이며 삶이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한 연습장인지도 모른다.

삶의 참 의미, 진정한 삶의 원형이 무엇인지...

삶은 그것을 알아 가는 과정의 연속이며 그 연속선상에서 깨우치고 또 허방에 빠지기도 하고...

그런 삶이 반복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새벽 두시에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빗줄기가 대기를 갈랐다. 번개가 치는 순간에

눈을 번쩍 떴다. 세상이 갑자기 빛으로 가득했고 소리로 가득했다. 아이가 놀랄까 걱정이

되어 아이를 바라본다. 언제든 놀라 눈을 번쩍 뜨면 안아줄 요량으로....

그러나 아이는 고요하게 아니, 쌕쌕거리며 잠들어 있다. 하루의 피로가 그 잠 속에 녹아 있다.

더위도 천둥 번개도 아이에겐 그리 힘들고 지치는 요소도 아니면 놀람의 요소도 아닌가보다.

부모의 기우다. 너무나 과잉보호하는가. 자기 생각에 빠져 아이가 놀랄것을 먼저 헤아려 준다지만

아이는 아이의 힘으로 그 순간을 이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부모가 할 일 이라 생각하며 나를 돌아 본다.

 

콩깍지를 까서 주는 것보다 콩깍지를 까는 방법을 알려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

부모교육부터 해야할 것 같다.

 

오이 향과 오이 맛사지가 주는 삶의 깊은 의미를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한 방법이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 할 수 있는 지름길

이라는 생각이다. 아이의 얼굴에 오이를 올려 주면서 내가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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