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며/구름

겨울 갈대 숲

나비 오디세이 2007. 1. 13. 22:24

겨울 날.

하늘은 진한 파란물을 뿌려 놓았고 그 물이 쩍 갈라져 깨질 것 같은 추위로 몸은 오스스한 날.

소한과 대한의 사이에서 겨울이 맹위를 떨치는 주말 아침, 아이가 줄포생태공원에 가자고 조른다.

나는 머리가 무겁고 피곤했으나 가기로 했다. 그럴수록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안다. 몸도 마음도 갇혀 있으면 오히려 더 아픈 것 같기에.

 

줄포생태공원 가는 길에는 습지가 많다. 그곳은 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습지에는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겨울도 마다하지 않고 꿈틀대는 것이 보인다. 흐뭇하다. 습지를 보호해야 한다. 생명 있는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지켜내야 한다.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숨통을 조여가고 있으니 그것이 어찌 아니 슬픈가.

 

겨울 날의 갈대숲은 쓸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갈대숲 속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그래도 바람이 덜하다. 갈대들이 서로 비벼대며 소리를 낸다. 물기를 다 빼버린 몸에 쉭쉭 소리를 내며 노래를 한다. 갈대는 잎들을 모두 떨구고 몸통만 남은 머리에 가난하게 꽃술들이 남아있다. 가볍고 가벼워진 갈대들. 텅 빈 몸을 지니고 겨울 찬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흔들흔들 한다. 그대로 버틴다. 그들은 결코 겨울 바람에 숙이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한 껏 가벼워진 그들은 가벼운 그대로 자연의 법칙앞에 순응하고 있다. 아름답다. 그 얇아진 숲에 개개비들이 날아 다닌다. "개개, 개개"한다. 작은 몸들이 갈대숲 그 비좁은 틈새를 잘도 날아 다닌다. 신기하리만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작은 새. 개개비.

 

아이와 나는 개개비의 노래소리와 그들의 춤사위를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아이는 신나게 뛰어다니더니 덥단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서 미소가 피어난다.

 

흔들거리는 갈대숲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아니 나를 보려고 노력했다. 언제나 마음에선 지킬과 하이드가 싸우고 있다.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가 대화를 나눈다.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늘 선을 택하지만은 않는다. 늘 선을 택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우리 세상은 더 나아졌을까? 악을 뒤집어쓴 선, 선을 뒤집어 쓴 악, 선을 위한 선, 악을 위한 악, 그 중간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상태가 더 흔한 세상. 나는 나와 타협을 한다. 욕구에 충동에 더 약하게 움직이는 나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 맑은 물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 나다. 아무리 애써도 파문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파동은 점점 커져만 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깊이가 더해지면서 파문이 일 때 점점 약해지는 것일진대 나는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는 것인가. 갈대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피하지 말고 온몸으로 맞서 싸우라고.

 

두렵다. 나는 싸움에서 늘 진다. 나를 이기지 못하고 지고 만다. 왜 그럴까. 나약한 정신상태에서. 아니 놓아버리지 못하는 욕심때문에. 어느 것이든지간에 나는 나를 비우지 못하고 가득 채운 마음때문에 그렇게 무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가벼워진 갈대처럼 속을 비운 갈대처럼 살아가야 할텐데......갈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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