痛通統/서랍

아버지와 아들

나비 오디세이 2007. 8. 25. 08:26

내 어릴 적 한겨울에, 오빠는 발가벗긴 채로 쫓겨났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발을 동동구르며 아들을 찾아 다녔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도 울었다.

오빠는 동네어귀의 논에 볏집에서 잠들어 있었다. 추운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하염없이 바라다보았다.

오빠는 어릴 적에 말썽을 참 많이 피웠다. 장난꾸러기였다.

그렇지만 늘 동생들을 잘 챙기는 마음착한 오빠였고,

정이 많아서 친구들을 항상 우리집에 불러들였다. 어머니는 그 친구들에게도 어머니였다.

 

내 눈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월이 흐르면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보였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등지게 되고 나서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엔 변화가 일었다.

서로를 직시하는 눈이 떠진 것일까.

아뭏든 아버지와 아들은 가까이 살면서 부딪치고 또 부대끼고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관계에 발전을 꾀하는 형태를 취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컸다.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언제나 채찍이 되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아들은 감정에 골이 패였다.

관계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듯했다.

아버지의 머리엔  흰머리가 늘었다. 아들의 머리에도 새치가 많이 생겼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 사랑이 가득하다. 측은지심이랄까.

당뇨로 인해 투석을 하고 있는 올케. 그런 아내의 병수발을 항상 웃으면서 하고 있는 오빠.

그런 오빠의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아버지. 눈시울이 젖어 있다.

이제는 그들에게 예전에 있었던 콤플렉스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것도 딸의 입장에서 바라본 관계의 일부다.

당사자들의 심리는 알 수 없다. 나의 관점일 뿐.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변화가 일었음은 분명하다.

 

오늘 아침에 화초에 물을 주는데

물풀 생이가래의 숫자가 몰라보게 늘어났다.

한달 전쯤, 아랫집에서 몇 뿌리 얻어다 조그만 수반에 담아 놓았는데

그게 어느새 수반을 큰 것으로 갈고 그것도 가득채우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생이가래의 수가 늘어가는 것처럼 불어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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